한달에 3-4건씩 범칙금 날라와

  보상금 내세워 감시분위기 조장


'전 국민을 고발자로 만들 것인가.'

요즘 정부 정책은 걸핏하면 신고니 보상이니 하면서 고발을 부추기고 있다.

교통법규 위반차량에 대한 신고를 돈으로 보상하면서 국민간에 적대감을 심어주고 부패 방지, 역시 신고에 의한 금전으로 해결하려는 제도까지 도입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출근길 샐러리맨들은 장애인 주차장에 관리자 명의로 붙어 있는 ′위반 시 벌금 10만원과 고발 조치하겠다′는 결코 유쾌하지 않는 글귀를 읽으면서 아침을 시작하며 주말은 야외에서 쓰레기 투기에 시장 군수의 위협 팻말을 보는 것도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전시 한 경제단체에 근무하는 김남규씨(43·가명).
그는 요즘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
대전 둔산 경찰서장 명의로 사흘이 멀다하고 날아오는 ′교통법규 위반 차량 신고 관련 사실 확인 요청서′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4월 한 건에 이어 지난 달 4건, 그리고 이 달 들어 3건이나 되었다. 더구나 오늘은 출근해서 업무를 준비중인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2건이 집으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줄잡아 벌금만 해도 80만원이다.
이쯤 되면 돌아 버린다.

이렇게 되다보니 김씨는 교통 법규 위반에 따른 반성보다 악감정만 남아 있다.
굳이 따지고 보면 할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4차선이라고는 하지만 골목길이나 다름없고 차량 통행도 뜸해 중앙선 침범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구나 신고제 도입 이전에는 거의 습관처럼 넘나들던 곳이다. 물론 이웃 고발용으로써는 가치가 있지만 ...

벌금도 부담이지만 매번 경찰서로 출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아내 보기도 민망하다. 말은 않지만 칠칠맞기 짝이 없다는 눈치다.
그는 법규 위반은 잘못된 일이라고 전제, ″교통량도 적고 흔하게 건너갈 수 있는 곳인데 그곳에다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전문적이고 상습적으로 사진을 찍어 신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성보다 악감정만 유발

신고를 조장하는 일은 비단 교통신호 지키기와 같은 작은 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정부가 대 국민 정책을 수행하면서 필요성과 정책에 담긴 의미를 홍보하여 국민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기보다 신고에 의존해 황당하게 만들고 있다.
부패 방지법이 단적인 예가 되고 있다. 사회의 썩은 부분을 법으로 도려내야 한다는 현실도 서글프지만 신고에 정책의 무게를 더 두고 있어 안타깝다. 부패는 도덕성의 문제이지 반드시 법으로만 다스릴 일은 사실 아니다.
말이 신고지 실상은 ′밀고′다.
남의 잘못을 몰래 알려주어 자신에게 반사이익을 가져오는 것. 그것을 정부는 국민들에게 보상금이라는 당근과 벌금형이라는 채찍을 양손에다 쥐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문 ′꾼′들이 설치고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교통법규 위반이 가장 흔한 예이지만 등록 안된 자판기도 이들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구청이나 시청에 등록되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자판기가 보상금을 노린 전문 신고 꾼의 새로운 표적이다. 식품의약품 안전청에서 미등록 자판기는 신고 시 15만원, 무허가 식품의 제조, 가공, 판매행위에 대해서는 30만원의 보상금을 주도록 발표한 이후 폭발적으로 신고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보상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연도별 신고 건수와 지급액을 보면 1998년 160건에 78만원, 99년 500건에 2000만원, 지난 해 700건에 3700만원 등으로 조금씩 증가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6월말 현재 신고건수는 무려 8400건에 이르렀고 이 중 1500건에 대해서만 보상금이 지급되었는데 액수는 1억2800만원에 달했다.

억울한 시민 없도록 배려를

그렇다면 과연 신고와 보상이 법 집행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을까.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물론 일부 효과는 인정할 수 있지만 국민을 감시자로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요소를 감안하면 그 효과는 정말 미미하다.

둔산동 H오피스텔에 근무하는 박성래씨(38).
그는 날만 어두워지면 중앙선을 넘나든다.
낮 시간대는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는 전문 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규를 지키지만 밤에 까지 찍겠느냐며 그렇게 행동을 한다. 내심으로는 낮에 찍혀 벌금을 낸데 대한 앙갚음도 일견 없지는 않다. 이것이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이라면 정말 효과는 크지 않다.
박씨의 말이다.
″이것은 가치관의 문제이지 법으로, 더구나 신고제라는 형식을 빌어서 다스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범법을 용인하라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을 모두 고발자로 만들어 서로 감시하고 경계하는 결과를 가져와 화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발 위정자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한다.″

이에 대해 대전대 유재일 교수는 ″고육지책이지만 경찰이나 사법 당국에서 소청할 기회를 충분히 주어 고발된 사람이 억울하지 않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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