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단 최교진 대전참여자치연대공동의장
8.15평양 민족통일 대축전 남측대표단이 6박7일의 일정을 마치고 21일 오후 2시 21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340명의 남측 대표단에는 김용우 통일연대 대전·충남 상임대표(목사)와 박강수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배재대총장), 최교진 대전참여자치연대공동의장(부여세도중 교사)등 우리지역 인사 3명이 포함됐다. 대전지역 대표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교진 공동의장(50)을 만나 이념 논쟁에 불을 당긴 이번 방북에 대해 들어보았다.
최의장은 인터뷰에 앞서 TV뉴스에 보도되는 남측대표단의 소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긴 여행으로 피곤했음에도 불구, ″제가 하는 얘기를 가감없이 꼭 실어 달라″는 말을 시작으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줬다. 대담은 대전시 서구 도마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 8. 15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에 남측대표단으로 참석한 소감은
″막연히 앉아서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말을 많이 했는데 막상 가서 직접 눈으로 보니까 겨레가 무엇인지 알겠더군요. 물론 북한의 경제사정 등을 바라볼 때는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6·15공동선언이 통일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교류의 장이 열려야지요″
- 평소 통일관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우리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았어요. 우리가 받은 반공교육은 공산주의가 아닌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교육받았어요. 우리가 중국에는 적대감이 별로 없어요. 중국도 공산주의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틀린 것과 다른 것은 반드시 구별 할 줄 알아야 해요. 우리들의 아이들에게는 통일시대에서 살게 해야지요. 통일은 우리 민족이 살길이니까요. 이번 방북을 통해서 통일관이 특별히 달라지거나 한 것은 없어요. 단지 막연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중학교 교사로 있습니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꾸준히 우리민족이 함께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해 줄 겁니다.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서로 만나면 더 큰 감동이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순수하니까요. 우리나라의 교원단체 성격을 지닌 북한의 교육문화일꾼동맹과 부문단체 토의에서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방학을 이용해서 아이들의 통일캠프를 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 방북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둘째 날에 있었던 역사왜곡 남북자료전시회와 부문별 단체토의 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역사왜곡 남북자료전시회는 남북이 서로 협력해서 모든 자료를 준비하고 그것을 동시에 전시한다는 점이 무척 의미 있었던 일 같아요. 또 부문별 단체토의 시간에서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구요. 백두산 장군봉 등정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중국을 통해 장백산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명산 백두산을 보고 왔으니까요.″
- 남측대표 일부가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때 상황은
″이번 사건은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행사가 방북 첫날 (15일) 낮 12시에 있을 예정이었어요. 원래 계획은 서울에서 오전 10시 출발해서 낮 12시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었죠. 하지만 출발시간을 낮 12시로 늦추면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행사를 하지 않을까 해서 12시에 출발한 것 같아요. 우리가 평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죠. 평양공항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저희를 환영해 주었어요. 아침 8시부터 나와서 점심도 못 먹고 기다렸다고 해요. 그날 날씨도 무척 더웠었는데도 말이죠. 저희 대표단은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호텔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쉬고있는데 오후 6시쯤에 북한측에서 전부 로비로 불러냈죠. 북한측은 무척 초조해 하면서 한쪽에서는 화도 냈습니다. 북한측 주장은 ′공동행사도 아니고 참관만 해달라는 건데 낮 12시 행사를 남측대표를 위해서 6시까지 기다렸으니 참관만 해달라′는 주장이었죠. 그때 대표단이 세 무리로 나뉘었어요. 먼저 지도부는 회의에 들어가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상태였고 또 한 무리는 공동행사도 아닌데 참관하는 건 괜찮지 않겠느냐, 또 한 무리는 어찌되었건 지도부 결정에 따르자는 무리로 나뉘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때 세 무리의 선택이 모두 타당했다고 생각이 되요. 거기 참관했던 분들도 그 일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거예요. 북한이 주장하는 3대 헌장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분들도 계셨어요.″(이날 무리한 공동행사도 아닌 데 참관 만 하는 것은 괜찮다는 쪽에서 독자적으로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 행사 이후의 대표단의 분위기는.
″둘째 날 지도부에서 ′이렇게 통제가 안돼서 어떻게 하느냐. 망신이다. 오늘이라도 당장 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 첫째 날의 일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오전에는 부문별 토론을 하면서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자성하는 분위기였어요. 북측의 권유로 오후일정은 진행됐죠.″
- 만경대에서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방명록 내용에 대한 반응은.
(강교수는 17일 김일성 주석의 만경대 생가를 방문하여 ′만경대 정신 이어 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라는 글을 남겼다)″방명록 내용은 정확히 몰랐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더더욱 몰랐고요. 나중에서야 듣게 됐어요. 강교수가 만경대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니까 항일운동의 정신을 이어 받아 통일을 이룩하자는 의도였다고 했어요. 만경대 방명록 내용이 알려지면서 대표단 내부에서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무리를 하셨구나 하며 안타까워했어요.″
- 이번 대표단에 대한 언론의 보도내용을 어떻게 보시는지.
″북한에서 기자들의 취재를 허용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군요.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보도해라′, ′방북기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이번에 방북한 기자들은 단순히 어느 행사에 몇 명이 참석했다는 정도로 기사를 썼을 거예요. 서울 데스크에서 기사가 확대보도 된 것 같아요. 시기가 안 좋았죠. 신문사 사주의 검찰조사 등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있는 보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 대표단 일부가 사전 북측과 교신을 통해 별도 행사에 참가키로 협의했다는데.
″그런 얘기는 북측에서도 언뜻 들은 것도 같아요. 첫째 날 북측에서 남한대표가 행사에 참관하기로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가지 않겠다면 어떻하느냐며 화를 내는 걸 보기는 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번 민족통일 대축전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대규모의 민간교류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남과 북이 이렇게 대규모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던 행사였던 것 같아요. 정부의 통일 정책 못지 않게 민간교류 또한 중요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보완을 거쳐 민간교류를 확대, 실시해서 남과 북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