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력 없는 자민련 ˝게갈 안나요˝

   ˝사교육비에 허리 휘어요˝

   지하상가 상인 조혜자씨

시장만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은 없다.
 ´여름장은 애시 당초 글러서…´로 시작되는 ´메밀 꽃 필 무렵´이나 ´떡장수, 메밀 묵 장수, 국수장수… 가지가지 소리가 있는 시장´으로 묘사한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이든 거기는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이다. 또, 수요·공급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경제 원리라는 교과서적인 경제 논리가 그곳에서 나왔고 무리한 정책 집행에 대칭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모두가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론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의 입 소문이야말로 서민들의 정서를 가장 잘 대신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낮. 입 소문을 찾아 대전 중앙로 지하상가에 나가봤다.

 ˝장사가 안돼요. 거짓말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안돼요. IMF후유증 때문이지요. 지난해보다도 매출이 30%는 떨어졌다고 봐야지요. 게다가 손님들 대부분이 카드를 써요. 그러니 돈이 남을 데가 어디 있겠어요˝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11년째 여성복을 판매하는 조혜자씨(42·사진).
 중앙데파트 경력 5년까지 합하면 벌써 16년째다. 이쯤되면 이골이 날 때도 됐다.
 그런데 벌이는 영 신통치 않다. 아무리 기고 난다고 해도 손님이 오지 않는 데야 대책이 없다.
 ˝혼자서 가게를 해요. 아침에 잠깐 친척이 와서 도와주지만 밤늦게 까지 혼자 장사를 합니다. 종업원을 두면 수지를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요. 30% 마진이라도 관리비, 임대료 내고 서울 왔다 갔다 하는 비용 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어야지요.˝

 ´그렇게 안되는 장사를 왜 하느냐´고 다그쳐 보았다.
 ˝그래도 쬐금은 남아요. 인건비 따 먹기죠.˝

 대전롯데 백화점, 갤러리아 등이 들어서면서 상권이동이 눈에 보였다. 게다가 외환위기까지 터졌으니 시쳇말로 죽을 맛이었다는 게 상인들 얘기였다. IMF직후에는 한 집 건너 한 가게씩 매물로 나왔었다.

 - 장사가 왜 그렇게 안되죠?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딱 갈라져 있었는 데 우리집은 주로 돈이 적은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요. 그런데 IMF이후 중산층 이하가 몰락하면서 엄마들이 옷을 사 입지 않아요. 엄마들도 일자리를 찾아 나선 곳이 보험회사나 다단계 판매가 대부분이었죠. 그 수입까지 전부 합해도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옷을 사 입을 여유가 없게 되었죠.˝

 인터뷰 도중 간간히 손님이 들자 조씨는 조용조용한 말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흥정이 다 이뤄질 듯하면 짐짓 반말투로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둘을 고르면서 돈이 모자란다고 하자 ´하나 사려고 오셨지´하며 상대방을 읽어가며 조근조근 물건을 팔았다.

 6만원 어치를 구입한 손님이 가자 이번에는 정치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DJ 인기 없어요˝

  - 김대중 대통령은 어때요.

  ˝이 사람 찍으면 잘될까 했는데 전에나 마찬가지예요. 서민위해 베푼다는 것도 그대로이고 별로 변한게 없어요. 옛날이 오히려 경기가 더 좋았어요. 광주쪽은 몰라도 대전에는 인기가 없어요.˝

 그녀는 ´대통령이 바뀌면 득을 보는 쪽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피해를 보는 곳도 있다´며 출신지역은 아무래도 혜택을 보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YS(김영삼)보다는 조금 낫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자민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치적인 판단보다 서민의 생각은 흔히 감정과 드러난 사실을 매우 직설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표로 연결되는 것은 시장 상인들의 바닥정서다.

  ˝자민련요. 요즘 게갈 안나요. 한마디로 결단력이 없어요. 눈치만 본다는 게 상인들 여론입니다. 지난번에는 1백명중 7-80명이 찍어주었지만 지금은 반도 안돼요. 나한테 묻지 말고 택시를 타보면 더 잘 알아요. 선거가 닥치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호응 할 수 없는 당입니다.˝

 ˝강창희 괜찮았어요˝

  그렇다면 탈당한 강창희의원은 반대급부를 얻고 있을까.
 ˝지난번에 탈당했을 때 잘했어요. 그때 인기 올랐어요. 호응도가 괜찮은 편이지요. 서민들 얘기가 거의 맞아요. 있는 사람들은 고위층 편이지만 서민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요. 상인들이 하는 얘기가 중요해요.˝

  정치얘기는 계속되었다. 김대통령은 국민보다 본인을 위해 일을 하는 게 많다. 노벨상 수상이 대표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돈을 먹지 않았다지만 그만두고 나가봐야 안다는 등등의 말이 오갔다.

  하지만 자녀들 교육관계에 들어가자 조씨는 상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지나친 사교육비 때문이었다. 과외를 안시키면 뒤쳐지고 시키자니 부담이 크고 이래저래 부모들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달에 1백만원은 잡아야 합니다. 한 과목당 20만원씩이니까 그 돈을 댄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없는 사람은 공부를 못한다는 말이 되지요. 수석을 차지한 학생들이 인터뷰할 때 보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열심히 했다고 하는 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과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홍시장 처음보다 못해요˝

  이날 조씨는 홍선기시장에 대한 상인들의 입을 빈 평가와 장사 속에 일어나는 애로사항을 걸죽하게 얘기했다. 특히 홍시장은 ´지하상가를 많이 도와 줄려고 한 사람중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처음보다는 평이 좋지 않다´는 말로 평가를 대신했다.
 또 옛날에는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장사를 배운다고 했지만 요즘은 천만의 말씀이다. 대졸 출신들이 머리를 싸매고 장사에 뛰어들고 경영이 있어야 한다는 게 과거와 다른 세태라고 덧붙혔다.
 ˝우리야 장사만 잘되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관심이 없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문을 나서는 등뒤에 그녀는 혼자말처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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