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교통및먹거리] [드라이브코스] [명소및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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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수 소개

대청호는 1980년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금강 본류를 가로막는 대청댐의 담수로 인하여 생긴 인공호수이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 관내의 갈전동, 미호동, 부수동, 삼정동, 황호동, 이현동 등 6개 법정동과 대전광역시 동구 관내의 추동, 세천동, 신상동, 신하동, 사성동, 주촌동, 오동 등 14개 법정동이 대청호와 인접하여 있고, 충청북도 관내의 청원군, 옥천군, 보은군 등 200여 리까지 그 물줄기가 닿아 있다. 2개 시·도, 5개 군·구의 4,134 ㎢의 광활한 유역에 조성되어 있는 대청호는 14억 9천만 톤의 저수용량을 가짐으로써 금강 유역의 홍수 피해를 크게 줄이는 한편, 도수로(導水路)를 통하여 청주지구, 금강하류지구, 만경지구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또 대전, 청주, 공주, 부여, 논산, 천안, 아산, 장항, 군산, 전주, 이리 등에 전력 및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여 우리 나라 중부권의 젖줄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청호는 이와 같은 경제적인 혜택 못지 않게 금강 유역민의 크고도 맑은 마음을 담아 보는 이로 하여금 속세의 사리사욕을 잊고, 마음을 정화케 하는 명경지수로서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다. 대청호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농사를 지어 오던 생명과도 같은 농토를 잃고, 애환이 담긴 집과 마을이 물에 잠긴 고향을 바라보며 인고의 세월을 삭혀가는 수몰지역 인근민의 애절한 향수와 그 주변 지역의 숱한 전설은 아직도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대청호 안의 여러 섬들과 주변의 수려한 경치는 해상공원 한려수도를 방불케 한다. 이같은 대청호는 인근의 유성온천, 대덕연구단지, 엑스포 과학공원, 정부대전청사, 계룡산국립공원, 그리고 공주, 부여의 백제문화권 등과 연계되는 관광코스로서의 이점과 개발가능성이 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통편
대청호수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손쉽게 댐(잔디광장)에 이르는 코스는 신탄진에서 버스나 택시 혹은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버스는 신탄진역 앞에서 730번, 청주에서 오는 110번을 이용하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용호가도로 가려면 역시 신탄진역 앞에서 730-1번을 이용하면 된다. 한편, 용호가도의 반대편, 즉 세천동, 비룡동, 추동 코스로 가려면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이나 대전역에서 621번 일반버스를 이용하면 되고 신호가도(신상동, 신하동, 오동, 어부동, 회남)로 가려면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이나 대전역에서 630번, 632번 일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간은 대전역을 기준으로 오동까지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먹거리
대청호 주변에는 유명한 식당이나 토속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왼쪽 강둑에는 '원조매운탕' 집이 있는데 쏘가리, 메기 매운탕이 유명하고, 보조댐 옆에 있는 '나루터식당'(042-932-2404)은 민물장어구이로 유명하다. KBS '도전 내가 최고' 에서 장어부분 전국 최우수상 수상, 대전 한밭 음식축제 대상 수상 등의 경력이 이를 입증해 준다. 보조댐 지나자마자 우측에 있다. 보조댐을 지나 대청댐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보기에도 아담한 통나무집이 있다. 식당 이름도 '통나무집'(042-932-5225)인데 이 집의 별미는 청둥오리와 백숙, 그리고 민물고기 매운탕이다. 맛좋은 음식과 호젓한 분위기를 함께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강쪽으로는 '대청그린가든', '호반의 집'이 강과 어우러져 있다. 신탄진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보조댐을 조금 지나 가다 보면 검문소 오른편길로 추동 가는 호반길이 있는데 이곳에는 부르기에도 기분 좋은 '야호식당'(042-932-0661)이 있다. 쏘가리 매운탕이 진미이다. 유명한 장어구이집인 '은행나무집'과 '강촌가든'을 지나 약 5분 정도 산길을 더 달리면 반달형 고갯길 왼쪽으로 감나무에 둘러싸인 그럴듯한 옛 찻집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건축을 전공한 우리 고장 사람이 오랜 탐문 끝에 발견한 최적지에 심혈을 기울여 시설을 했으니 들어서면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 동구 마산동, 주산동을 거쳐 추동에 이르는 길과 오동, 신상동, 신하동, 사성동 쪽의 대청호 주변 길에도 크고 작은 식당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용호가도와 신호가도
신탄진에서부터 오동까지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전설·고적들과 비길데 없는 아름다움이 길게 펼쳐져 있다. 남해안 한려수도가 무색할 만큼 곳곳에 생긴 아기자기한 섬들은 '내륙의 다도해'라고 불리우는, 말 그대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꿈과 낭만을 보여준다. 용호가도라 불리는 미호동에서 비룡동까지의 길이나 신호가도라 불리는 신상동에서 오동, 어부동을 거쳐 회남대교까지의 길 양 옆의 산이나 호수 그리고 들녘에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개나리와 진달래! 많은 연인들의 가슴이 설레이다 못해 팔딱거리게까지 만드는 비경이 펼쳐진다. 가을은 또 어떤가? 길가 양옆에 줄줄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코스모스가 꼬리를 살살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긋 수인사를 한다. 한번 가보면 다시금 또 가보고 싶은 환상적인 드라이브길이다.



대청댐 준공기념탐
대청호 주변에는 대청댐 준공기념탑 옆에 세워진 치어방양(稚魚放養) 기념비와 광장 아랫쪽에 있는 희생자 위업추모비(爲業追慕碑)가 지나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치어방양비는 당시의 대통령 영부인이 1981년 5월 28일 직접 이곳 대청호에 내려와 치어(어린 새끼고기)를 넣어 준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영부인이 방양한 새끼물고기는 모두 20만 마리(잉어)로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가끔씩 커다란 몸체를 뒤집으며 수면을 차고 올라와 부근의 낚시인들과 관광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추모비(위령탑)는 5년 8개월 동안의 대청댐 건설현장에서 뜻밖의 사고로 숨져간 꽃다운 넋들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댐 건설기간 중 숨진 사람은 모두 8명이었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대청담 물홍보관
대청댐 전망대에 올라가면 대청호를 더욱 아름답게 느낄 수 있으며 물에 관한 것과 댐의 건설 및 각종 제원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물홍보관이 있다. 특히 잔디광장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운동을 즐기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현암사(懸巖寺)
현암사(懸巖寺)는 대청댐 광장 맞은편인 북쪽의 구봉산(옛이름 : 구룡산 370.3m)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위산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하여 '懸寺' 또는 '달음절'이라고도 한다. 그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고 사찰이 절벽에 위치하여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이 절은 무척 가난하여 중들이 들어와 살길이 없어 자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 착하고 청정한 스님이 이 절에 들어와서 기도를 하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절을 지키리라 맹세하였다. 그 스님은 쌀이 없어 찬물로 요기를 하고 염불을 하다가 기진하여 잠이 들었다. 그때 한 노승이 꿈 속에 나타나 “이 절 아궁이를 뒤져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놀라 깨어 아궁이를 살펴보니, 거기에는 혼자 한끼 먹을 쌀이 나와 있었다. 그는 이 쌀로 밥을 해 먹고 기도하다 때가 되면 아궁이에서 나오는 쌀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그 후로부터 이 절에 오는 스님들은 아궁이에서 나오는 쌀로 연명하며 이 절을 지켜왔다. 그러던 중 이 절에 욕심 많은 스님이 와서 살게 되었다. 그 스님은 꼭 한 사람이 세끼 먹을 쌀만 나오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 아궁이에 담겨 있을 쌀을 더 많이 한꺼번에 얻어내기 위하여 그 아궁이를 쑤셨다. 그때부터 쌀이 나오지 않고 바람이 나왔다고 한다.

취백정(翠白亭)
취백정(翠白亭)은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로 미호동 18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은 숙종 15년(1689)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와서 읍내동의 사저에 제월당(霽月堂)을 짓고, 아울러 이곳 미호(渼湖)에는 숙종 27년(1701)에 취백정을 지어 학문연마와 후학양성에 전념하였다. 후일 정조는 친필로 사호각(四皓閣 : 商山四皓에서 온 말로 보인다)이란 현판을 내렸는데, 이 현판은 광복후 도난당하여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홑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당국의 보조를 받아 1961년과 1969년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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