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성급한 공약이 남긴 생채기

지난해 10월 21일 발사된 국내 우주 발사체 누리호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지난해 10월 21일 발사된 국내 우주 발사체 누리호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순수 국내 기술이 집약된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올해 하반기 2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최근 1차 발사 실패 원인을 분석한 설계 변경안을 확정했다. 정치권이 ‘우주청’ 설치 입지를 두고 유불리를 따지며 씨름하는 동안, 연구진들은 우리 발사체에 달착륙선을 실어 보내는 미래를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이 우주산업 전담기관 설치 공약을 들고 나왔다. 각 지역을 방문해 우주청 설치나 우주국방혁신클러스터, 항공우주산업클러스터 조성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콕 집어 경남에 우주청을 설치하겠다고 나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가 위치한 과학도시 대전 민심에 생채기를 냈다.

우주 산업은 국방·항공 산업과 연관된다. 항공 산업이 발달한 경남은 이미 2년 전 정부 방산혁신클러스터로 지정됐다. 당시 대전은 1차 공모 서류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올해 공모에서는 논산, 계룡 등 군 관련 주요 기관이 위치한 충남도와 손을 잡아 유력지로 꼽히고 있다. 또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관련 사업체가 집중돼있어 방위사업청 이전지로 언급될 만큼 관련 기반도 탄탄하다.

산업 분포 등을 고려하면, 경남에선 ‘항공우주청’, 대전에선 ‘우주청’, 지역 연구계에선 ‘우주항공청’이라는 명칭으로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는 이유도 나름의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는 셈이다. 

중앙부처라고 다를까. 우주가 앞서느냐 항공이 앞서느냐의 문제는 소관 부서와 직결된다. ‘항공우주청’이 되면 국토교통부가, ‘우주청’ 또는 ‘우주항공청’이 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할한다. 청내에선 벌써부터 조직을 선점하기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우주가 이권 다툼, 선거 쟁점이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또' 목소리가 묻힌 사람들이 있다. 원치 않게 홀대 DNA를 갖게 된 과학기술 연구계 종사자이다.

발사 다음은 머묾, 큰 그림 그려야

대전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지난 달 20일 대전시청 앞에 모여 윤석열 후보의 항공우주청 경남 설치 공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자료사진. 
대전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지난 달 20일 대전시청 앞에 모여 윤석열 후보의 항공우주청 경남 설치 공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자료사진. 

발사 다음 단계는 ‘머묾’이다. 우리가 우주로 떠나는 궁극적 이유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다. 마침 한국형 달 궤도선 ‘KPLO’가 오는 8월 달 탐사 여정에 오른다. 스페이스X의 팔콘9에 실려 미국에서 발사되면, 석 달에 걸쳐 달에 도착하고, 1년 동안 달 100km 상공을 돌며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달에 머물기 위한 탐사의 시작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궤도선 조립을 마쳤다. 달 궤도선에 탑재된 6가지 장비 중 5개는 국내 연구기관과 대학교에서 만들어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고해상도 카메라(LUTI), 한국천문연구원 광시야 편광카메라(PolCam), 경희대 자기장 측정기(KMAG),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감마선 분광기(KGRS),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우주인터넷장비(DTNPL) 등이다. 대학을 제외하고 모두 대전에 위치한 연구원에서 탄생했다.

우주산업은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분야다. 향후 우주산업은 강대국들 간 패권다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이 전 지구적인 재난 없이 안전하게 성장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같은 청 단위여도 정부부처와의 연계가 더 중요한 기관이 된다는 뜻이다.

외교 문제도 떼놓을 수 없다. 각 국 우주전담기관은 향후 글로벌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주 생태계는 이미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특정 민간기업에 의해 점유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를 이끄는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그는 전 세계 위성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유럽우주국이 최근 우주탐사기업의 독주에 제동이 필요하다고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주청은 설치 여부도, 명칭도 아직 불투명한 사안이다. 국·내외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지에 대한 고민도 미진하다. 그런 와중에 정부와 학계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대통령 후보들의 말 한마디에 휩쓸리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대전인지 경남인지를 떠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우린 달에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달에 머물기 위해 간다. 달이 끝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달은 또다른 우주로 향하는 작은 정거장이 될 것이다. K-우주과학은 정치인의 입을 떠나 국민적 공감대 차원에서 큰 그림으로 그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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