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왜 항공우주청을 정치로 끌어들였나

지난 21일 대전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한지혜 기자.
지난 21일 대전을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한지혜 기자.

대전이 항공우주청 입지논란으로 뜨겁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항공우주청을 경남에 설립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대전 민심이 들끓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지탱해 온 과학도시 대전의 위상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 때문이다. 

항공우주청 입지 논란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건 윤석열 후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원론적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 우주전략본부 설립, 국가우주청 설립 등을 약속한 것과 달리, 윤 후보는 경남입지를 못 박으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항공우주청 신설이 왜 필요하며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어느 곳에 위치하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등을 윤 후보 스스로 충분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그는 대전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항공우주청 입지논란과 관련해 “카이(KAI)가 있는 경남이 아무래도 업무효율이나 클러스터 형성에 도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항공우주연구원과 천문연구원 등 연구개발 기반이 있는 대전보다 제조공장 등 기술·산업적 기반이 있는 경남에 항공우주청을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세종시와 대전에 부와 청이 모여 있는 것은 그야말로 비효율이다. 부와 청의 특성에 맞춰 전국에 산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윤 후보는 대전민심을 달래기 위해 ‘방위사업청 대전 이전’을 약속했다. 그는 “(방사청은) 3군 사령부와 국방과학연구 클러스터가 함께 있는 것이 맞다”며 “방사청은 군사작전, 훈련, 군수지원, 조달 이런 부분과 일체가 돼 움직이기 때문에 계룡 3군사령부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생태계 구축, 효율화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윤 후보 제안은 세종시 행정부처 이전계획을 백지화하고 기업도시로 키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연상시킨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부처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실익을 충청권에 주겠다는 논리를 폈지만, 충청권은 이를 거부하며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다. 

물론 일개 행정청 입지논란을 세종시 건설논란과 견줄 수는 없지만, 정부기관 이전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듯한 태도와 인식수준은 그때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 정치권 일부 인사들이 “항공우주청 유치보다 방위사업청 유치가 훨씬 더 큰 실익”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세종시 수정안’을 설파하던 ‘고향사람’ 정운찬 전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충청을 고향이라고 칭하는 윤석열 후보에게 고향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커다란 떡고물’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현저하게 뒤떨어진 한국의 항공우주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역량이 있는 곳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안철수 후보 정도의 식견과 비전이다. 공교롭게도 ‘부산사람’ 안철수는 “항공우주청을 경남이 아닌 대전에 설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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