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주향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본부 과장

스크린 영화 속 초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Superhero)가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묵묵히 주어진 소명을 실천하며 일상을 지키는 작은 영웅들이 있다. 코로나19 시대 국민의 내일을 지키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토종 씨앗과 지역 문화재를 보물처럼 여기며, 자신의 것을 나눠 이름 모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을 맞아 우리 동네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① 코로나 파견 근무, 박 과장의 잊지 못할 하루

박주향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본부 요양운영부 과장.
박주향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본부 요양운영부 과장.

2020년 국민들의 삶은 코로나 전과 후로 나뉜다.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연말 3차 대유행까지, 유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고, 방역 최일선 관계자들의 과로사 소식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코로나 위기 속 가장 빛난 곳은 방역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이다.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정은경 청장은 지난달 영국 BBC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됐다. 외신은 그에게 ‘바이러스 헌터(Virus Hunter)’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존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9월 12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다. 정원이 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책임감은 여전히 무겁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질병청 상황실 직원 중에는 세종시 소재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본부 파견 직원도 있다. 

질병청 승격 시기, 이곳에서 파견 근무를 마친 박주향 요양운영부 과장을 만나 K-방역 중심에 섰던 소회를 들어봤다. 박 과장의 체험 수기는 최근 기관 공모전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염 매개 공포, 자가격리자로 산다는 것

박 과장이 질병청 상황실 파견 근무 업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과장이 질병청 상황실 파견 근무 업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과장은 올해 8월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파견 근무했다. 후배 직원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주말과 휴일 없는 특별 업무에 지원했지만, 출근 전부터 코로나 감염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공단에선 어르신들의 장기요양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공단은 코로나 진단검사비와 치료비 지원, 대구 등 특별재난지역 건강보험료 감면, 코로나 관련 상담 업무 등을 수행했어요. 바이러스 감염 대응 업무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회 안전망을 지키는 복지 서비스입니다.

33일 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방역 컨트롤타워 내 코로나 매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였어요. 출근 후에도, 퇴근 후에도 늘 가족과 사회와 거리를 두고, 스스로 자가격리자로 지냈죠. 생소한 용어에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3일이 지나니 직원들이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공단에서 파견된 직원은 입국자 관리를 위한 통계 작성과 행정 업무를 맡는다. 해외입국자 중 자가격리 면제서를 발급받아 입국하는 사람들의 동선과 증상 발현 상황을 능동 감시하는 게 주 업무다.

보통 입국자들은 2주간 국내 임시 시설에 머물며 의무 자가 격리를 해야 하지만, 사업·외교 등 다양한 이유로 자가 격리 면제서를 발급받아 입국한 자는 음성 판정 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질병청에서는 잠복기 등을 우려해 능동 추적 감시하는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검역신고서 등에 허위 연락처를 기재해 신원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가장 힘들죠. 능동 감시자 위치 확인이 매일 이뤄져야 하는데, 어렵게 연락처가 파악돼도 경찰을 통해 탐문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요. 대사관 관계자들이나 사업차 입국한 외국인들이 대부분인데,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거부하는 일도 있고, 우리와 문화가 달라 어렵기도 합니다.

주소를 확인해 가까스로 찾아가도 개인정보라며 번호를 주지 않는 경우도, 짜증을 내시는 경우도 있어요. 관리 앱(APP)을 삭제해버리고, 전화도 받지 않으면 그때부턴 긴장의 연속입니다. 무조건 찾아서 위치와 증상 유무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아파트 거주자의 경우 관리사무소로 전화해 위치 확인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 협조가 어렵습니다.”

올해 9월 기준 하루 평균 120~200명이 자가격리 면제서를 받아 국내로 입국했다. 누적 인원까지 포함하면 매일 1300명을 관리한다. 업무는 대상자 전원의 상황을 모두 확인해야 끝난다.

“경찰에 협조 요청을 했을 때는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해요.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땐 부서원 전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공항 검역소 직원들과 경찰관분들께 여러 번 부탁을 해야 하는 날도 있어 늘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당신들은 K-방역의 영웅” 잊지 못할 그 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오송 질병관리청을 찾아 신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 대한 임명장을 직접 수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오송 질병관리청을 찾아 신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 대한 임명장을 직접 수여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상황실 직원들이 축하하는 장면. (사진=청와대)

지난 9월 11일은 코로나 위기 속 국민 모두에게 감동을 준 하루로 기억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송 질병관리청을 찾아 직접 정은경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날이다.

“전날 외부 주요 인사가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통령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퇴근하는 날도 별다른 일 없이 출입문에 대국(大菊) 화분 두 개만 딱 놓여있었거든요. 다음날 출근해 여러 보안절차를 거쳐 사무실에 들어가니 필수 인원만 남아달라는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꾸밈도 없이 사무실 풍경도 일상 그대로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피로감으로 퉁퉁 부은 대통령의 얼굴, 정식 행사 전 여러 번의 임명식 리허설에도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정 청장님의 모습이에요. 직원들은 어떤 유명한 아이돌 스타의 방문보다 더 큰 환호와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날 이후 출입문 옆 국화를 볼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했어요.”

박 과장은 추석 연휴 첫 날까지 출근한 뒤 공단으로 복귀했다. 공단 직원들은 여전히 1개월 주기로 질병청 순회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엑셀 업무를 하느라 시력이 낮아져 안경을 맞췄다는 점 빼고는 긍정적인 변화도 생겼다.

“건강관리를 위해 시작한 간단한 아침 운동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복귀하고 나니 눈이 나빠져 안경을 맞추긴 했지만, 매일의 일상이 소중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견 근무를 앞둔 젊은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있어요. 파견 근무는 소속감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다행이 요즘 젊은 친구들은 혼밥까지 잘 즐기더라고요.

늘 가진 자와 누리는 자들이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칭하지만, 돌아와보니 진짜 영웅들은 그곳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멀리서 바라보지만, 그분들을 여전히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믿음으로 건강하게, 잠시만 더 수고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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