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재형 공주여중 교사

스크린 영화 속 초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Superhero)가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묵묵히 주어진 소명을 실천하며 일상을 지키는 작은 영웅들이 있다. 코로나 시대 국민의 내일을 지키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토종 씨앗과 지역 문화재를 보물처럼 여기며, 자신의 것을 나눠 이름 모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을 맞아 우리 동네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① 코로나 파견 근무, 박 과장의 잊지 못할 하루

② ‘영겁의 유적’ 세종시 문화재 지키는 파수꾼

③ ‘작은 등불’ 이름 모를 생명을 살리는 법                         

유재형 공주여중 교사. 사진은 300회 헌혈 기념 촬영 모습.
유재형 공주여중 교사. 사진은 300회 헌혈 기념 촬영 모습.

코로나 시대, 발을 동동 구르는 곳이 있다. 국내 혈액 수급을 책임지는 ‘헌혈의 집’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반복되면서 헌혈과의 거리두기 경향도 짙어졌다. 올해 ‘피가 마른다’는 표현은 관용구가 아닌 단어 뜻 그 자체에 가까웠다. 

유재형(59) 공주여중 도덕 교사는 유례없는 혈액수급난에도 14일에 한 번씩 헌혈에 동참해 생명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유 교사의 헌혈 횟수는 현재까지 총 474회. 대전·세종·충남 지역 명예의 전당 등록자 중 3번째로 많은 횟수다.

유 교사는 고교시절부터 약 42년 간 적십자 정신을 몸소 실천해왔다. SNS 상에서 ‘헌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헌혈 문화 만들기에도 앞장선지도 수 년째다. ‘1초의 찡그림, 작은 사랑의 실천’은 그가 전파하는 헌혈 독려 슬로건이다. 

제자에게 전한 ‘생명 나눔’ 정신

유 교사의 고향은 공주 유구읍이다. 그는 유구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충남고등학교에 진학한 1978년 3월, 청소년적십자(RCY) 단원이 되면서 처음으로 헌혈을 했다. 대전 용두동 한 혈액원에서 시작한 헌혈은 42년 째 이어지고 있다.

유 교사는 “초창기 1년에 2~3번 하던 헌혈이 성분 헌혈로 바뀌고, 이후로 14일마다 한 번씩 헌혈을 하다 보니 최근 474회 헌혈을 하게 됐다”며 “젊은 청춘 시절 사랑과 봉사로 삶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40년 넘는 세월동안 적십자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헌혈 그 자체도 보람이지만, 헌혈 증서 기증을 통해 겪은 잊지 못할 사연들도 많다. 유 교사는 2007년 금암중학교(현 계룡중)에 근무하면서 심장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하고, 학업에 열중하던 제자에게 헌혈증서 수 십장을 기증했다. 제자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다. 

충남 논산 광석중 재직 때는 선천성 혈우병으로 고생하던 제자를 알게 돼 병원 진료에 보태라며 헌혈증서를 기증한 일도 있었다. 

유 교사는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제자를 10년이 지나 만나 건강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기뻤다”며 “고향인 공주에 돌아온 뒤로는 3년 전 백혈병을 앓고 있는 한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아이에게 헌혈증서를 기부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공주중 재직 당시에는 담임을 맡았던 학생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수 차례 대수술을 받게 되자, 헌혈증서 30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지인과 후배, 봉사회 동료 등 혈액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서를 나눠왔다.

사랑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

유 교사의 책상 서랍장 위에 놓인 인형들. 올해 코로나 상황으로 정상적인 수업이 여의치않자 인형에 마스크를 씌워 수업에 활용했는데, 1학년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모아뒀다.
유 교사의 책상 서랍장 위에 놓인 인형들. 올해 코로나 상황으로 정상적인 수업이 여의치않자 인형에 마스크를 씌워 수업에 활용했는데, 1학년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옆 자리에 모아뒀다.

적십자 정신은 인류애를 실천한 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전한 메시지로 정의된다. “적십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고, 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문장이다. 이 작은 등불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헌혈이다. 

유 교사는 “평소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혈액에 맑은 정신, 건강한 활력이 깃들 수 있도록 유념하며 살아왔다”며 “헌혈을 시작한 후로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과음·과로를 조절하며 평온한 심성을 유지하려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그는 “건강하기 때문에 헌혈을 할 수 있고, 헌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봉사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봉사에 관심을 갖다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건강관리도 자동적으로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유 교사는 SNS 페이스북 페이지 ‘헌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헌혈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 잠재적인 헌혈 동참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취지도 있다. 

유 교사는 “헌혈을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모임에 가입할 수 있다”며 “헌혈문화 확산 차원에서 운영을 시작했는데, 전국에서 1400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혈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전혈선혈은 경험자에 한 해 만 69세까지 가능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까지 헌혈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끝으로 유 교사는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인형을 가져다 놓은 게 이만큼 쌓였다"며 "마스크 좀 잘 올려쓰고 다녔으면 해서 인형에 이렇게 마스크를 씌워서 수업에 가져가면 아이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유 교사는 “우리가 사랑을 전해야 할 대상은 우리 주변,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익명의 누군가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정신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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