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98] ‘소탐대실(小貪大失)’ 우(愚) 범하지 않기를

대법원이 지난 14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구본영 천안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했습니다. 구 시장은 판결 직후 시장 직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재선 당선 이후 1년 5개월여 만입니다.

야당은 지방선거 당시 구 전 시장이 당선무효형을 받으면 보궐선거와 시정 공백이 불가피하다며 공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조차 우려와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공천을 밀어붙였습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 직전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해찬 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한 69명의 국회의원이 구 전 시장 구명 탄원에 서명까지 했는데요. 오히려 돌아온 건 ‘유죄 확정’ 판결이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민주당을 향한 총공격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이 천안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너희도 냈으니 우리도 낸다? ‘똑같은 놈들’되려나
지방선거 압승은 새 정치문화 만들라는 시민 명령

그러나 민주당은 무공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꺼내들며 천안시장 선거에 또 후보를 낼 모양입니다. 되레 지난해 2월 당선무효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한국당에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서로 나무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한국당을 향한 민주당의 비판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입니다. ‘너희도 후보를 냈으니, 우리도 낼 거야’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충남지사에 출마해 보궐선거를 초래한 양승조 지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의 엄혹한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로 탄생했습니다. 지방선거 때 시민들이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준 건 그들과 ‘똑같은 놈들’이 되지 말라는 이유였습니다. 또 국민과 시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천안시장 당선 무효로 보궐선거와 시정 공백을 야기한 민주당이 다시 후보를 낸다면, 똑같은 우를 반복하는 겁니다. 막대한 보궐선거 비용이 시민 혈세로 나간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민주당의 무공천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인물을 내세워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말이지요.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민주당과 현 정부에 그런 반론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함량미달 시장을 뽑았다는 부끄럼과 배신감이 팽배한 시민들을 달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진정한 사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뢰 잃으면 책임지는 게 정치의 A,B,C

양승조 지사와 박완주 의원(천안을)은 천안시장 궐위 사태로 시민들에게 “송구하다”, “죄송스럽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겁니다. 그것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무한신뢰를 보낸 시민들에 대한 예의이며,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입니다.

정치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신뢰를 얻었다면 성과로 유권자에 보답하고, 반대로 신뢰를 잃었다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천안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와 같은 날 치러집니다. 천안은 충남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수부도시’입니다. 따라서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살려면 천안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더 큰 판을 잃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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