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플랫폼 활성화와 전문가 참여로 시너지효과 내야

“고향에 기부하셨나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꼭 한 번은 ‘고향사랑기부제’가 화두에 오른다. 아직 국내에는 생소해, 이와 비슷한 제도를 2008년부터 시행한 일본과 비교하는 일도 흔하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활성화를 위한 제도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00% 세액공제를, 그 이상은 16.5%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단, 최대기부 가능 금액 500만 원으로 제한됨). 행정안전부는 홈페이지에서 고향사랑기부제의 ‘열악한 지방재정 보완’, ‘지역경제 활성화’, ‘국가 균형발전 기여’, 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지역과 도시의 격차를 해소하고, 인구감소로 침체된 지역에 활기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일본의 고향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사용처'를 알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무성의 고향세 소개페이지에는 고향세의 중요한 이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첫 줄에는 고향세 제도는 ‘기부자가(납세자)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2천엔(한화 약 2만원) 이상이면 전액을 상한 없이 기부하고, 100%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세금을 내는 것과 같다. 반면, 흔히 세금은 일단 납부하면 용처를 알 방법이 없지만, 고향세는 반드시 용도를 지정하게끔 되어 있어,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응원하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여 힘을 보탤 수 있다.

그리고 지자체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지역에서 가장 매력을 끌 만한 이야깃거리를 전하거나, 지역에 꼭 필요한 일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고향을 향한 기부자의 관심이, 지자체의 노력을 이끌어내고 ‘지역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할까. 현재 온라인상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기부할 수 있는 곳은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인 ‘고향사랑e음’ 하나뿐이지만, 지자체 소개는 5cm도 되지 않는 박스의 몇 줄의 글뿐이다. 첫 페이지에 바로 지자체의 소개가 노출되어 있지도 않다. 몇 차례 클릭을 거쳐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정보는 너무 부실하다. 이래서는 어느 지자체가 어떤 매력이 있고, 지역 활성화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행정안전부의 고향사랑e음 지자체 소개 페이지(사진 왼쪽). 일본 후루사토초이스의 지자체 소개 페이지(사진 오른쪽). 한눈에 봐도 지자체에 대해 첫 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
행정안전부의 고향사랑e음 지자체 소개 페이지(사진 왼쪽). 일본 후루사토초이스의 지자체 소개 페이지(사진 오른쪽). 한눈에 봐도 지자체에 대해 첫 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

2008년 시작한 일본에는 15년 동안 많은 성공사례가 있다. 그 성공사례들의 대부분은 민관협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민관협력의 중심에는 ‘기부자’의 니즈 파악이 있었다. 지자체는 인구가 감소화면서 마을이 사라질 절박한 위기에 처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기부자들에게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기부자는 지역을 돕고 싶지만 1788개의 지자체 중 어느 곳을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중앙정부의 주도로 2008년에 야심차게 시작된 제도는 그렇게 4년 동안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11년부터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본 최초로 문을 연 고향세 전용 기부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가 바로 그 시작이었다. 당시, 각 지자체가 기부자와 개별우편으로 대응하던 상황에서, 이 플랫폼의 등장으로 기부자들은 온라인에서 더 손쉽게 각 지자체의 소개나 소식을 접하고,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 가히 혁신적인 일이었다.

후루사토초이스는 기부자의 편의성을 생각했다. ‘지역의 매력을 가장 쉽게 기부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렇게 기부자들이 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지역의 소개를 보고, 온라인상에서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 편하게 기부할 수 있게 되자, 기부자는 급속히 늘어났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총무성은 세액공제를 간편히 받을 수 있는 원스톱 특례 제도를 신설하고, 기본 자기부담금을 낮추는 등 다양한 제도적인 변화로 성장흐름을 가속화 시켰다. 민간의 활동을 막기보다 자유롭게 열어주고, 함께 상생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각 지역들은 기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민관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현의 도쿠노시마는, 민간기부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와 함께 성장한 마을 중 하나이다.

“처음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마을 사람들이, 민간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을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생기자, 기부자가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질지 저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내기 시작했습니다.”

도쿠노시마정의 타카오카 군수의 이야기다.

외부 전문가들은 마을의 공무원과 지역민들이 ‘기부자’의 관점에서 지역의 매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을이 움직일 원동력이 된 것이다. 민간 전문가와의 워크숍에서 마을 사람들은 일본에 200마리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인 아마미검은멧토끼(Pentalagus furnessi)를 볼 수 있는 야간투어를 기획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적색목록에 위기(EN, Endangered)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쉽게 보기 어려운 종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여러 자원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 지역만의 특별한 답례품들을 만들어갔다. 또, 검은토끼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기부를 호소하여, 2018년부터 5년간, 누적 700여 명에게 약 1억 3천만 원을 기부받았다. 이는 민간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기 전과 비교하면 금액상으로는 약 370%가 증가한 수치이다.

마을에서 시장과 기부자에 수요에 맞춘 답례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기부자에게 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시장의 반응을 얻기 위한 홍보는 전문적인 분야이다. 일본의 민간 플랫폼은 지역과 긴밀히 연계한다. 기부자와 지역을 잇는데 열정적인 민간 전문가와 지역을 위한 일에 헌신적인 공무원이 만나면 시너지는 극대화된다.

앞서 소개한 트러스트뱅크는 다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처음 고향세 담당자가 된 공무원들을 매년 교육하는 워크숍을 운영한다. 다른 지역의 선배 담당자들이나, 신규 담당자들과의 네트워크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새로운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다. 기본 업무에 대한 설명 외에, '기부자를 이해하고, 마을의 자원을 활용하여 어떻게 매력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중점으로 한다.

2014년부터는 지역에서 고향세를 잘 활용하고 있는 지역사례를 보다 널리 알리고 응원하기 위한 후루사토초이스 어워드(AWARD)도 진행하고 있다. 이 이벤트는 단순히 우수사례를 선발하고 치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가 지역에서 해 온 일들의 스토리와 과정을 전달하며, 기부자가 더 지역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관계인구의 창출 측면을 고려하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실제로, 이 어워드에서 선발된 지역의 상품들의 특별전 등을 기획으로 답례품을 선보일 때, 더 많은 기부자의 호응과 피드백이 온다고 한다.

한국에는 이와 같이 지역의 프로그램을 소개하여 관계인구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기업이 없을까? 2011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지역활성화에 이어지는 공정여행을 진행해온 공감만세는, 2017년부터 일본법인을 설립하고 일본에서의 고향세 실험을 시작했다. 직접 모금도 진행했고, 연간 5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는 일본 단체와 함께 체험 여행형 답례품을 함께 개발했기도 했으며, 고향세를 활용한 지역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공감만세는 올해 초 한국에서 위기브(wegive)라는 플랫폼을 열어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다년간 트러스트뱅크와 연계하여 관련 노하우를 익혀, 한국의 사정에 맞게 고향사랑기부제가 지역활성화에 활용될 수 있도록 지정기부 시스템을 도입했다.

강원도 양구군과 함께, 파지 사과를 활용한 '못난이농산물 다가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단 3일 만에 1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기부 페이지에는, 파지 사과를 활용하여 식초 등의 상품을 만든 사회적 기업 창업가의 스토리도 소개되었고 기부금을 어떻게 지역에서 활용할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이 내용에 공감하여 많은 기부가 이루어 졌다.

정법모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정법모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기부자, E-커머스 및 모금 관계자, 고향세 전문가, 그리고 적극적인 공무원과 지역의 사회적 기업이 민관협력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행정안전부는 민간의 모금활동을 예기치 못한 변수로 여겨 곧 사이트 운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고향사랑기부제의 핵심은 ‘기부’이다. 애초에 기부자에게 지역을 알리지 못하면 기부를 받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부자를 고려한 홍보가 중요하다. 지역에 관심을 가져줄 만한 사람들을 타겟팅하고, 그 타겟에 맞도록 홍보하고 답례품을 개발하는 일련의 과정을 공무원 혼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공무원 혼자 모든 것을 담당하게 하는 구조이다. 지역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도 쉽사리 시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제도는 기부자 중심의 사고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많은 지자체들이 기부자에게 닿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플랫폼에서 지역과 기부자는 연결될 수 없다. 지금처럼 지역의 자발적인 노력마저 꺾으며, 기부자와 지역을 단절시켜서는 제도가 성장할 수 없다. 앞선 일본 사례처럼, 민간전문가와의 협력으로 힘을 얻은 지역의 공무원과 주민공동체, 민간단체, 답례품 생산자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시너지효과를 내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민간플랫폼을 허용해 지자체의 정보를 기부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전하고, 기부편의성을 높이고, 지정기부를 통해, 각 지역의 활동을 세부적으로 전달하며, 그러한 활동들을 지속해서 해나갈 수 있도록 민간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 지금 제도 활성화를 위해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과제이다.

법적으로 민간플랫폼의 활동을 막을 근거는 전혀 없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에 관한 법률 제7조(고향사랑 기부금 모금 방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광고매체를 통하여 고향사랑 기부금의 모금을 할 수 있다’.

이 때, ‘광고매체’란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약칭 정부광고법)’에 의거하는데, 제2조 4에 따르면, 신문, 인터넷신문, 인터넷뉴스, 정기간행물, 방송, 옥외광고물, 뉴스통신 등이 명시되어 있다. 지자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모금대행이 가능하게 되어있고, 민간플랫폼 운영업체가 상기의 광고매체로서 법적으로 등록이 되어있다면, 지자체와 답례품을 홍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언론매체와 행정안전부의 인터뷰에서도, 민간플랫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는 코멘트는 찾아볼 수 없다.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이고, 500만원 상한이나 주소지 제한 등의 조항을 민간플랫폼에서 잘 걸러낼 수 있을지 우려되기에 고향사랑e음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인터뷰뿐이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 1월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부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자가 기부금이 어디에 쓰일지도 공개하지 않은 채로,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 한 차관은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지정기부나 해외동포 기부가 되지 않는다는 이형석 의원의 문제 제기에 “일부에서 요구하고 있는 민간시스템을 포함해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행정안전부도 제도개선, 지정기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민간시스템의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빨리 한국에도 민간플랫폼이 활성화되고, 다양한 민간 전문가와 지자체가 협력하며 고향사랑기부제의 취지에 맞는 성공사례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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