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이로움, 공정과 생태, 성과 많지만 아쉬움도
김제동 고액강연 논란은 부당한 프레임
광역과 기초, 자치분권 아직은 미숙
정치포부 “가야할 길, 높은 산 만날지라도…”

 

“대덕구청장 998일. 군부쿠데타로 미얀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국의 정치적 상황과 가족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는 미얀마 결혼이주 여성들과 잠깐 만나서 위로의 마음을 나눴습니다. …….”

박정현 대덕구청장이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의 앞부분이다. 박 청장은 지난 2018년 7월 취임 첫날부터 그날그날 자신이 참석한 행사, 만났던 인물, 대덕구 비전 등에 대한 단상을 담아 기록하고 공개하는 일을 이어왔다. 그리고 벌써 페이스북에 1000일째 메시지를 기록하게 됐다.

대다수 단체장들이 SNS를 열심히 활용해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지만 박 청장처럼 일정한 형식에 자신의 단상을 담아 매일매일 직접 소통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민들에게 구청장이 하는 일을 알려드리는 일, 그것이 곧 구정의 방향을 알리는 일”이라고 했다. 매일 일과가 끝난 후 30분에서 한 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에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작했나’ 하면서 후회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박정현 구청장다운 솔직화법이다.

박정현 대덕구청장과 함께 ‘페이스북 메시지 1000일’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사전 질문지는 없었다. ‘대덕구청장 1000일’에 녹아 있는 대덕구 지역화폐 대덕이로움, 주민자치, 공정과 생태, 조직문화 개선 등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박정현의 페이스북 메시지가 힘을 갖는 이유는 ‘성과와 홍보’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제동 강연논란에 대한 단상, 광역행정인 대전시와 관계에서 오는 아쉬움 등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무엇보다 자신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소신도 밝혔다. 불균형과 불공정 해소를 위한 소명, 박정현 구청장은 “아무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처럼 그것이 ‘구시대의 막내’가 걸어야 할, 고난한 길일지라도 소신 있게 걸어가겠다는 의지였다. 대덕구청장 1000일에 맞춰 그와 나눈 대담 전문을 소개한다.

디트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정현 대덕구청장.
디트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정현 대덕구청장.

“페북 메시지, 사실 더 세게 쓰고 싶지만...”

 ‘대덕구청장 000일’ 이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매일 메시지를 남겨왔다. 그것이 벌써 1000일째다. 어떤 의미인가.

“시의원으로 일했을 때도 매일 하루에 한두 꼭지 메시지를 썼다. 구청장이 된 후 직원이 사진을 보내주니까, 그 중 좋은 사진을 골라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가 더 좋아졌다. 사실 주민들은 구청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행사장에서 마주치는 인물 정도로 생각한다. 구청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대덕구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드리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단체장들의 경우, 페이스북 메시지까지도 직원들이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구청장의 경우는 어떤가.

“밤 11시에 누가 대신 써주겠나. 누가 대신 써주면 아무래도 표시가 난다.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쓰는 것인데, 그건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다. 몇 개월하고 내가 왜 시작을 했던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날 일정이 별로 없어도 30∼40분, 일정이 좀 많았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단순하게 일정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도에 따라 순서도 정리하고 느낌이나 단상도 기록한다.”

구청장의 업무일지 성격이자 개인적으론 일기장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벌써 1000일째를 기록하고 있으니 엮어서 책을 낼 수도 있는 분량 아닌가.

“그렇다. 사실은 글을 쓰고 나중에 돌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페친에게) 일일이 답도 못한다. 그러려면 항상 이것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긴 어렵다. 작년에 대덕구정을 분기별로 되돌아볼 일이 있어서 주욱 살펴본 적이 있는데 의미있는 내용이 있더라. 제가 썼기 때문에 뉘앙스만 봐도 아 이때는 속이 좀 상했구나하는 대목도 있고, 내가 이런 근사한 말을 했단 말이야 이런 경우도 있고(웃음). 나중에 책을 엮어볼까 그런 생각도 있다.”

한 권의 책이라면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목,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 것 같다. 어떤 대목인가.

“어느 순간 정말 화가 난 일이 있어서 그런 걸 쓴 적이 있는데, 다음 날 비서실장이 ‘기자들과 공무원들 전화오고 난리가 났다’고 하면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묻더라. 한 편으로 조심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의원이었으면 더 세게 쓸 만한 내용도 많았다. 정치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행정은 뭔가에 치우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단어 하나 선택하는 것도 신중하다. 답답함은 있다. ‘누가 거짓말 했어요’ 이런 것도 쓰고 싶은데, 못한다(웃음). 개인적 일기장이 아니라 공공적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담은 것이기에 좀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김제동 고액강연료 프레임, 부당한 공격”

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1000일의 메시지 중 가장 많이 담긴 내용은 뭔가. 

대덕이로움이다. 나중에 책을 써볼까 생각 중이다. 지역화폐를 하는 곳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지역화폐를 바탕으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고민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인천 서구, 대전 대덕구가 대표적이라고 자부한다. 때문에 지역화폐 문제만 따로 골라내서 책을 써볼까 구상하고 있다.

두 번째 많은 내용은 주민자치 분야다. 드러나지 않는 주민들의 요구가 뭘까 궁금했고, 그래서 걱정말아요 대덕, 목요현장데이트 등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렇게 주민들과 만난 내용을 많이 담았다. 주민자치회는 대덕구가 12개동 전체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박정현 대덕구청장이 지난 2019년 김제동 초청강연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정현 대덕구청장이 지난 2019년 김제동 초청강연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6월 김제동 초청강연 논란, 정말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됐었다. (박정현 구청장이) 참 공격도 많이 당했다. 당시 부당한 공격이라고 느꼈나.

“페이스북에 ‘허 참’ 이렇게 올린 기억이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김제동씨를 초청할 것이냐 아니냐를 문제 삼는다면 충분히 토론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를 가지고 돈을 문제 삼았는데 거기엔 동의하기 어려웠다. 김제동씨를 단순히 강사로 부른 것이 아니라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이벤트로 준비한 측면이 컸다. 이걸 ‘고액강연료 프레임’으로 공격하니까, 김제동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직원들도 고생 많이 했다. 전국적으로 비난전화도 많이 받았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공정과 생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올렸는데.

“구청장 당선 후 2019년 사업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하나가 행복, 둘째가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세 번째가 기후위기 대응이었다. 당시엔 ‘기후위기’에 대해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행정이 다룰 만한 소재가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가 왔고, 이젠 ‘기후위기 대응’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다. 국가적으로는 거기서 그린뉴딜정책까지 연결됐다.

그린뉴딜을 그냥 환경개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핵심은 패러다임 변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녹색경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에코샵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대덕에서 먼저 시작해보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했다. 친환경제품을 사용하고 싶어도 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무칫솔을 쓰고 싶어도 동네마켓에서 살 수가 없다. 주민자치회 분들 중에 꽃집이나 옷가게 등 하시는 분들이 샵인샵 개념으로 에코샵을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제안을 드렸고 반응이 좋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서 회의 등 많은 것을 바꾼 것으로 들었다.

“어떤 기관이나 회사에 가면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그 분위기를 문화로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덕구 조직문화 3가지 강조하고 있다. 잘 놀고 잘 쉬는 조직, 함께 성장하는 조직, 성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시하는 조직 세 가지다.”

“광역을 거쳐서 오는 재정, 불이익 많다”

일이란 것이 성과도 있지만 아쉬움이나 한계도 있기 마련이다. 자치분권 측면에서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서 답답함도 많이 느꼈을 법하다.

“사실 화날 때가 많다. 226개 지자체 중에 광역시 내 기초단체가 74개 있다. 74분 기초단체장들과 여의도로 데모를 하러가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다. 도 단위 기초단체는 재정이 직접 들어오는데, 광역시 기초단체는 광역을 거쳐 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대전시가 특별히 기초단체를 배척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관행 때문에 오는 기초단체의 불이익이 상당하다. 대전시와 분권정책협의회 통해 많은 부분을 해소하고 있지만, 아직은 민원을 넘어 진정한 분권을 이야기엔 준비가 덜 된 측면이 있다. 아쉬움이다.”

1460일 임기 중에 1000일이 지났다. 이제 460일 동안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실제로 300일 정도 남았다고 본다. 그 후엔 선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지난 기간 복이 많았다. 대덕구 공무원들이 워낙 일을 성과 있게 잘 하셨다. 다만 대덕구는 여전히 씨를 뿌릴 일이 많다. 몇 가지 아직 뿌리지 못한 씨앗도 있다. 문화관광재단, 경제진흥재단 등이 그것이다. 나머지 임기, 이 두 재단을 만들고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덕의 아이는 대덕이 키운다’는 슬로건이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데 교육문제, 문화적 환경 덜 갖춰서 떠나는 분들이 많다. 대덕에 남으면 아이를 잘 성장시키겠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얼마 전 경제비전 제시하면서 우리 아이들 초등4학년부터 6학년까지 용돈수당을 대덕이로움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아이들 경제교육도 시킬 수 있는 1석 3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가야할 길, 높은 산 만날지라도...”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으로 원구성 파행에 항의하며 단식을 했다. 당시 <디트뉴스>와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새 시대의 맏형이고 싶지만, 구시대의 막내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일한 정치비전과 꿈을 가지고 있나.

“정치인은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가 역사인식이다.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 정치인이 역사를 모르면 어떤 과오를 범하게 되는지 봐오지 않았나. 두 번째가 소통이다. 소통의 핵심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대목이다. 반성을 많이 한다. 세 번째가 시대적 소명이다. 시대의식이다. 새로운 시대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누군가 앞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 가다가 높은 산을 만날 수도 있지만 가야하는 것이 (정치인의) 소명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사회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불평등 뿐 아니라 생태계 안에서 생태계와 사람 사이의 불평등까지도 심각하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겠다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들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해 화가 난다는 말처럼, 공정의 가치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명이다.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 두 가지를 정치적 소명으로 알고 계속 걸어가겠다.”

(대담 풀 영상은 네이버 ‘디트TV’를 통해 곧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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