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⓸] 부여 성흥산성 사랑나무
‘서동요’부터 ‘호텔 델루나’ ‘쌍갑포차’까지, 십수 년 인기 촬영지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사진=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 사랑나무

‘갈바람’ ‘샛바람’ ‘하늬바람’ ‘높새바람’ 등 세상의 모든 바람이 방향을 잃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곳이었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언덕 같은 그곳에서 홀로, 하지만 깊게 뿌리내린 사랑나무를 보자 문득 당신의 안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 편지가 끝날 때쯤이면 알 수 있을까요?

잘 지내시나요?

사진='서동요'를 시작으로 성흥산성 사랑나무에서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사진='서동요'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성흥산성 사랑나무 가는 길목

대전에서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 사랑나무는 오랫동안 인기 촬영지였습니다. 사랑나무로 향하는 입구부터 그동안 촬영한 영화나, 드라마 안내판이 많았습니다. 몰랐던 것도 있지만 당신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드라마 안내판은 괜스레 반가웠습니다.

사랑나무가 있는 성흥산성은 ‘가림성(加林成)’이라고도 합니다. 사비천도 이전인 서기 501년에 쌓은 백제 시대 산성으로 해발 216m의 산 정상부에 돌로 쌓은 석성과 아래쪽에 흙과 돌로 쌓은 토성이 있는 곳이죠. 성 내부에 우물터·건물터 등이 남아 있고 남문과 동문, 서문 등의 문터 3개가 확인됐습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다고도 하네요.

이곳 ‘사랑나무’도 원래 이름은 ‘임천 가림성 느티나무’입니다. 지난 2007년 10월 향토유적 88호로 지정됐으며 400여 년의 세월을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좌우 반전을 통해 하트 모양을 만든 사랑나무
사진=좌우 반전을 통해 하트 모양을 만든 사랑나무

정상에 올라 나무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하트의 반쪽을 닮은 나뭇가지를 카메라에 담아 좌우 반전 등의 편집 과정을 거치면 완벽한 하트 모양이 되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사랑나무’라 불리게 됐습니다.

일명 ‘커플 여행 성지’ 또는 ‘인생샷’ 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제가 찾은 평일에도 연인들과 부녀지간, 4인 가족은 물론 혼자 온 남성도 있었습니다.

중학생 딸아이와 역사 공부를 위해 온 아버지는 “아직도 물이 가득 차 있다. 신기하다”며 우물터를 꼭 한 번 보고 갈 것을 권했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군산에서 올라온 20대 연인은 “석양이 있을 때 찍는 사진이 훨씬 근사하다”며 다음에는 꼭 해 질 무렵에 오라는 팁(?)도 전해줬습니다. 30대로 보이는 남성은 홀로 씩씩하게 사진을 찍더니 금세 훠이훠이 내려가더군요. 혹시 제가 말을 걸까 봐 도망간 걸까요? (웃음)

지난해 방영한 ‘호텔 델루나’(tvN, 2019)속 사랑나무는 극 중 장만월(아이유)이 고청명(이도현), 연우(이태선)와 함께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었던 과거 회상 장면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만월은 “나무는 좋겠어. 떠돌아다닐 필요 없이 편하게 눌러 붙어 살 수 있어서... 뭐? 이 나무로 집을 지어 준다고? 난 너랑 집 짓고 살 생각 없는데?“라며 살짝 튕기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사랑나무 앞에서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극 중 인물들은 배신과 죽음, 복수를 겪으며 산산이 조각나고 말죠.

또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쌍갑포차’(JTBC, 2020)에서 사랑나무는 마을의 성황나무로 나옵니다. 그러나 주인공 월주(황정음)는 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을 사람들에게 “내 죽어서도 당신들을 저주할 것이다”라며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맵니다.

그렇죠. 사랑에 어떻게 기쁨과 환희, 설렘과 즐거움만 가득하겠습니까. 시기와 질투, 배신, 원망, 저주도 난무하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도 마찬가지기에, 사람들은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인과 손을 잡고 소원을 빌면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싶은가 봅니다.

사실, 저는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게 아닙니다. 지금과 달리 나뭇가지가 앙상하던 어느 겨울에도 혼자 와 본 적이 있었죠. 당시에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연인들을 보며 숨을 돌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당신의 번호였습니다.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전화기만 바라보다 결국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혹시 그때 전화를 받았더라면 오늘은 당신과 함께 사랑나무를 볼 수 있었을까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부딪혀 오는 거친 바람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혼내는 듯합니다. 

그래도 한 번쯤 이곳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성에 한 번 와보세요. 성흥산성 주차장에서 10여 분 정도 쉬엄쉬엄 오르면 세월의 깊이가 오롯이 느껴지는 사랑나무가 따스하게 반겨줄 겁니다. 널따란 평지와 소나무 숲 그늘을 비롯해 약 5km에 이르는 성흥산 솔바람 길도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코스입니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부여 읍내로 나와 그 유명한 막국수를 먹어도, 연잎 밥을 먹어도 괜찮겠네요. 시장 구경을 좋아하던 당신이라면 부여 중앙시장을 찾을지도 모르겠군요. 수십 년 전통의 통닭집과 곰탕집이 있다고 하네요.

코로나19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날은 점점 더워집니다. 올해 여름은 ‘역대급 더위’가 될 거라는 예보도 있었죠. 무리하지 말고 바이러스나 더위를 살짝 피한 뒤 초가을에 길을 나서도 좋을 듯싶습니다.

항상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사진=성흥산성 사랑나무는 커플 여행 성지, 인생 샷 명소로 꼽힌다. 
사진=역사 공부를 하러 온 부녀(父女)가 사랑나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사진=역사 공부를 하러 온 부녀(父女)가 사랑나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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