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IN충청-⑭] 장항선 유일한 간이역…'택시운전사' 배경, 추억여행지 부상 

대전세종충남 지역 곳곳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명대사와 인상깊은 장면들을 회상하며 지역 관광 명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방문객들의 오감만족은 물론 추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촬영지 명소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장항선 노선 중 마지막 간이역인 충남 보령시 청소역. 승강장에서 바라본 역사 풍경.

유난히 길었던 50여 일 간의 장마가 끝나자 찾아온 무더위. 그 한 가운데인 8월 중순, 충남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의 ‘청소(靑所)역’과 만났다. 귓전을 때리는 매미소리와 먼 산마루에서 들리는 소 울음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청소역은 천안~장항을 잇는 143.1㎞ 장항선 내 유일한 간이역이자, 장항선 역사(驛舍)중 가장 오래된 역사(歷史)를 자랑하고 있다. 1929년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해 1958년 9월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원래는 인근 마을 이름을 따서 ‘진죽역’이라고 불렀지만, 1988년 ‘청소역’으로 바뀌었다. 현재 모습은 1961년 벽돌조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 간이역사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희소적 가치가 높아 2006년 문화재청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305호)으로 지정됐다.

사람들 발길이 끊긴 기차역의 운명들이 그러했듯이 청소역 역시 쇠락했다. 지난 1995년 화물 취급이 중단된 이후 통일호에서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이용객이 줄어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나서 지켜낸 곳이 바로 청소역이다. 현재는 하루 8번 무궁화호가 서고, 평균 20여 명의 승객이 이용하고 있다.

청소역 인근 거리 모습. 새로 생긴 일부 상가 외에 6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청소역에 오면 1960년대 과거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청소역은 물론, 주변 동네가 60여 년 전 당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페인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거친 벽돌의 윤곽과 세월의 흔적을 입고 있는 녹색 기와, 세 평 남짓한 맞이방의 낡은 집표함은 소박한 옛 모습 그대로다.  

역을 나와 동네로 눈을 돌린다.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낡은 단층짜리 시멘트 건물들에 들어선 역전식당, 미용실, 다방 등이 장항선의 연장선과 평행하게 줄지어 있다. 오래된 간판을 보며 거리를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역의 기능은 쇠퇴했지만, 추억 여행지로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지가 되면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에서는 독일기자 '피터'를 태운 택시와 시민군 트럭이 처음 만난 곳으로 묘사됐다. 굳이 1980년 광주 시가지 모습과 감성을 재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를 기념하는 작은 공원이 역사 주변에 있어 소소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10여 년 전, 배우 이순재 씨가 열연한 SBS추석특집 드라마 ‘아버지 당신의 자리’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청소역을 지키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다 나이를 먹으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화해와 용서를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택시 뒤로 청소역 인근 동네의 풍경이 담겨있다. [택시운전사 홈페이지]

과거 청소역은 청소면과 인근 오천면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인근 대천과 광천을 통학하는 학생과 성공을 꿈꾸며 상경하는 청년들이 이곳을 오갔다. 인근에 택시승차장과 버스정류장이 있어 5일장까지 섰다는데, 지금은 옛 말이 됐다. 그럼에도 청소역은 적막함 안에서 한적한 매력을 발산한다. 

모든 여정에서 숨 돌릴 휴식이 필요하듯, 이곳이 주는 여운은 ‘쉼표’로 다가온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험난한 광주 일정을 앞둔 길목으로 등장한다. 지리적으로는 충남 3대 명산인 오서산과 싱싱한 굴을 맛볼 수 있는 천북면 장은리 굴단지, 간재미 회무침으로 유명한 오천항을 가기 전 들르는 위치에 있다.

다만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장항선 2단계 개량사업이 끝나면 청소역은 역사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 때문인지 역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릴 때는 뜨거운 햇살과 맑은 하늘에도 불구하고 쓸쓸함이 밀려온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준 것들에 작은 위로를 얻듯, 마음의 쉼표가 돼준 그곳, 청소역이었다.

청소역사 인근에 조성된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지 기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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