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윤기 정의당 대전시당위원장
‘그들만의 세상’에서 ‘민주주의의 광야’로! 

김소연 대전시의원(왼쪽)과 박범계 국회의원. 자료사진.
김소연 대전시의원(왼쪽)과 박범계 국회의원. 자료사진.

임명장인가? 면죄부인가?
지난 21일 박범계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장에 임명되었다. 그의 지역구인 대전 서구을이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한참 시끄러운 이 시점에 최고위원회와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던 박 의원은 이날 발표한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대한 입장문 (이하 입장문)’ 마지막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더욱 깨끗한 정치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민주당에게 받은 면죄부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의혹까지 해소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천(私薦)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애정을 갖고 영입했던 김소연 시의원과 복심으로 불리는 전문학 전 시의원 사이에 벌어진 일을 몰랐다는 해명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 전 의원은 세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무부시장, 청와대 행정관 등에 거론되며 더 큰 꿈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박 의원의 손을 놓을 이유가 무엇이 있었겠는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만들어 낸 피라미드

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보다 하루 앞인 20일에 있었다. 박 의원의 지역구인 서구의원들, 둔산동 김창관 의원과 김신웅 의원, 갈마·용문·탄방동 서다운 의원이 줄지어 김소연 시의원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듯 SNS에 줄지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요즘 회자됩니다. 결초보은 잊지 않겠습니다”, “중퇴하신걸로 아는데, 졸업하신건가요?”, “선거기간에 왜 신고를 못 하나요?” 등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핵심 쟁점을 벗어난 말들로 김 시의원을 비난하였다. 

시민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 특히 청년 의원들까지 앞장 서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저런 물타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시민들이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 의원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 의원의 입장문 세 번째 항목 “김소연 시의원은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구절을 다시 보게 된다. 저 구절 앞에는 ‘나를 거스르고’가 생략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경고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해 바로 옆 서구갑 어느 동네를 지역구로 하는 김인식 시의원의 “대전 서갑 사무실은 비례대표들에게 특별당비를 안받았는데요. 받아도 되는거예요?”라는 SNS 댓글은 그 영향력 밖에 있는 자의 여유가 한껏 드러난다.

구태 정치를 혁신할 의지가 있었는가?

사실 ‘서구을’ 불법 정치자금 사건은 전형적인 양상을 보인다. 불법 정치자금이 어디까지 흘러 들어갔는지, 관련자는 더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이것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더욱 중요한 지점이 있다.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던 무대인 6.13 지방선거가 촛불혁명 이후 첫 지방선거였다는 점이다. 원래 저렇고 저랬던 구태 정치 혁신의 출발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어야 할 그 선거 말이다. 

촛불민심은 시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민생의 첨병이 되어야 할 지역정치의 신뢰회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전시당과 위원장이었던 박 의원은 이 기회와 숙제를 외면해 버렸다. 심지어 과반이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가장 좋은 조건까지 마련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파란 잠바 안에 빨간 내복을 입은 후보들’이라는 비판이 일었는데, 그것이 비단 시류에 따라 당적을 옮긴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구태 정치를 표상하는 경력과 마인드에 아랑곳 하지 않은 무원칙한 공천과 세력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가치를 포기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박 의원의 후원회장인 김종천 시의원, 이종호 시의원, 이광복 시의원 등은 민주당의 공천 원칙, 정체성, 도덕성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은 후보들로 지적 받았다. 그러나 모두 경선도 없는 단수 공천으로 밀어붙였고, 현재 시의회 의장, 보건복지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 등 요직을 맡고 있다. 

선거 후 중구와 유성구 의원은 성추행과 성폭력 2차 가해로, 서구의원은 업무추진비 유용으로 물의로 일으켰다. 중구의회, 서구의회는 ‘원구성 파행’과 ‘월평동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반대 결의안’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도긴개긴. 촛불혁명 이후에도 지방의회는 나아진 것이 없다. 구태가 여전한 지방의회와 불법 정치자금 사건은 시대정신에 제대로 새기고 실천하려는 노력의 부재가 부른 닮은 꼴 참사이다. 

공천시스템과 선거제도를 개혁하라

민주당 대전시당은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대책으로 ‘'비리 신고센터'를 들고 나왔다. 이 사건이 신고할 곳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는 말인가? 해야 할 말은 따로 있으나, 그 말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하나마나한 말쯤 되는 것 같다. 

김윤기 정의당 대전시당위원장. 자료사진.
김윤기 정의당 대전시당위원장. 자료사진.

그러나 지금은 그 해야 할 말은 해야 할 때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을 나누는 공천 시스템과 민심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이 그것이다. 특히, 박 의원이 책임감을 갖고 이러한 개혁을 선도해야 한다. “참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생활적폐청산위원장으로서 ‘지방 등을 포함해서 곳곳에 있는 민생의 버러지와 같은 적폐’를 도려낼 의지가 있다면, 내 곁의 적폐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정점에 둔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지방의원이 국회의원 비서냐’는 조롱 받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단수공천이냐, 경선이냐를 판단할 필요도 없다. 경쟁이 있으면 경선으로, 없으면 찬반투표로 가리면 될 일이다. 더 많은 이들과 권력을 나누면 소수는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도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양대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인 현실에서는 공천권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무엇보다 상대보다 나으면 되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마저 내려놓는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에는 나서지 않게 된다. 그것이 정치개혁이 지연되고 좌초되는 핵심적인 이유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는 또 한 번 좋은 정치로 나갈 기회를 맞았다. 잘못한 자가 누구인지를 명명백백하게 가려내자. 그러나 탐욕스러운 자의 진입을 막고 도태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미루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좋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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