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예순여섯번째 이야기] 일방통행 뒤 브레이크 걸리면 ‘남 탓’
용산 대통령실을 출입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과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하던 1층 현관 앞을 지날 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도어스테핑을 중단했고, 대통령실은 그 자리에 가림막을 설치했다.
대통령실은 기자들에게 ‘불미스러운 사태에 재발 방지 방안 없이 지속할 수 없다’고 했다. ‘불미스러운 사태’란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의 설전을 두고 한 소리다. 설전의 시발은 윤 대통령이 미국 순방에서 불거진 비속어 발언 때문이었다. 전 국민이 다 알아들은 말을, ‘대통령실’만 못 알아들었고, 대통령실 스스로 인정했던 대목도 나중에는 꽁무니를 뺐다.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도어스테핑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들과 소통을 끊은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기자들과 불통은 국민과 불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올해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제 강제 동원·위안부 문제는 쏙 빼놓고, 밑도 끝도 없이 ‘일본은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도 국내 기업에서 걷어 주겠다며 ‘면죄부’까지 줬다. 일본에 가선 정상회담까지 하고 올 땐 빈손으로 왔다. 와서는 20분 넘게 TV 생중계를 걸고 화난 국민을 한참 ‘설득’했다. 말이 길어지면 변명처럼 들린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노동시간도 들었다 놨다.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진화했는데, 대통령실은 ‘60시간 이상도 가능하다’고 다시 불을 지폈다. 국정의 방향과 철학이라는 게 있기는 한지 통 모르겠다.
문제는, 해명이란 걸 할수록 스탭이 점점 더 꼬인다는 데 있다. 그러면 또 언론을 탓한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의원은 “가짜뉴스와 소통 부족 등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언론에 “69시간 프레임에 빠져 갇혀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주 69시간이 가짜뉴스라고 하는데, 누가 말한 것이냐’는 야당 의원 질의에 “언론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정부는 언론이 동네북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지났다. 그런데 ‘마치 10년은 된 것 같다’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국민의 삶과 정서와 직결한 정책을 펼 때 필요한 ‘소통’이 빠졌기 때문 아닐까. 돌아보면,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그랬고, 만 5세 초등학교 조기 입학 때도 그랬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고,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가 걸렸고, 결국 후퇴했다. 그때마다 사과와 책임은커녕 언론 탓, 야당 탓, 전 정권 탓만 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국민과 소통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울타리도 투시형으로 설치해 국민이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일까. 대통령실은 청와대보다 더 구중궁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