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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新 서희 담판’ 볼 수 있을까
베트남에서 ‘新 서희 담판’ 볼 수 있을까
  • 류재민 기자
  • 승인 2019.02.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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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의 정치레이더57]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고려 성종 12년(993년)에 벌어진 거란의 1차 침입. 고려 장수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외교적 협상의 명장면으로 기록된 ‘서희 담판’입니다.

서희는 논리 정연한 담판으로 거란 군사를 돌리고 북방의 땅(강동6주)도 얻어냈는데요. 80만 대군을 끌고 쳐들어온 적장이 순순히 물러가고, 땅까지 내주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요? 제아무리 서희가 ‘협상의 신’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거란은 중국 본토의 송나라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하고 있다 보니 전쟁 때 고려가 송과 손잡고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고 겁을 먹은 겁니다. 서희는 거란이 왜 고려를 치려고 했는지 간파했고, 그 핵심을 건드렸죠.

서희 담판은 결과적으로 고려의 승리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거란에도 그리 불리한 협상은 아니었습니다. 거란은 형식적이나마 고려가 송과 관계를 끊고, 사대의 예를 받아낸 것으로 침략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또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그 땅에 성을 쌓아 북진정책 일환으로서 실리를 챙겼습니다. 서희가 발휘한 외교적 수완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화해를 이끌어낸 위대한 협상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27~28일) 베트남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 8개월여 만입니다. 그것도 당일치기도 아닌, 1박 2일 코스로. 하노이냐 다낭이냐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한국시간) 신년 국정연설에서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북한이 지난 15개월 동안 미사일 발사가 없었다는 점을 내세워 득의양양했습니다. “만약 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과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큰 전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시도하려는 트럼프나 체제 안정과 제재 완화를 통해 인민을 먹여 살리려는 김정은이 재회한다는 자체가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는 그들을 ‘21세기 판 서희’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직 어떠한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탁월한 협상가를 비유하긴 이르겠지만.

지난해 말 출간한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갑시다》에서 정청래 전 의원이 말미에 쓴 글입니다. “‘악의 축’인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고 하지만 닉슨은 ‘전쟁 범죄자’로 낙인찍힌 중국의 모택동을 찾아가 대화했고 레이건은 ‘악마의 제국’이라던 소련과 대화했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 중에도 북한과 대화해 휴전협정을 맺게 했다. 오늘의 평화는 그 덕이다.”

지난해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1차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곧 열립니다. 한반도는 ‘평화’와 ‘번영’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전한 비핵화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김 위원장이 어떤 협상의 결과물을 주고받느냐에 한반도 평화의 시간이 담보될 것입니다.

협상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내줄지 부터 생각해야 한답니다. 경제지 기자 출신 최철규 작가는 《협상의 신》에서 “‘무엇을 요구할까’부터 고민한다면 당신은 협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까’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천 년 전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했던 그날처럼.

이번 주 초 민족의 명절 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셨는지요. 그러나 이 땅에는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올해 설에도 북쪽 부모‧형제‧자매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생존자는 5만5987명이라고 합니다. 이마저 고령자가 많아 한 달에 300~400명씩 세상을 떠나다보니 전체 신청자의 40% 정도만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지난해 두 차례 정상회담(4.27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8월, 3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열렸고, 두 달 뒤 남북 고위급이 추가 상봉을 위한 회담도 약속했지만, 여태 감감 무소식입니다.

남북이 합의한 ‘화상상봉’은 낡은 장비를 교체해야 가능한 일인데요. 대북 반입이 금지된 제재 물품에 ‘모든 전자 기기’가 들어있는 바람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때문에 이번 북미 정상의 만남과 협상 결과는 우리에게도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협상 결과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도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협상이 잘만 된다면 28일 합의서를 발표한 김 위원장이 ‘참매’를 타고 서울로 날아와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공동으로 치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두 정상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합니다. 종국적으로 종전선언과 북미 수교, 단계적 남북통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도 부산이나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과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른 다음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내달리고 싶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그의 어록을 소개하며 오늘 정치레이더 마칩니다.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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