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김지은씨는 안 지사에 대해 “왕 같은 존재였다”며 (성추행 물의를 빚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와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동안 안 지사의 도지사직 수행 태도를 보면 김씨의 말이 안 지사에 대한 개인적 처지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 안 지사는 충남도에선 이미 대통령이었다.

안 지사의 파멸은 스스로의 책임이 크지만, 남성 도지사가 젊은 여성을 수행비서로 삼고 외국 출장까지 데리고 다녀도 될 정도로 지방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어려운, ‘왜곡된 지방자치’탓도 적지 않다. 안 지사는 지방에선 왕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중앙언론은 대권후보 안희정에만 이따끔 관심을 표했고 지방언론은 ‘지방의 왕’이 되어 있는 도지사를 감시할 수 없었다.

안 지사는 몇 년 전 당진군 일부가 평택에 땅을 빼앗기면서 도민과 당진시민들이 혈서와 삭발투쟁에 나설 때 태연히 외국 출장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다 할 귀국 브리핑도 없었던 걸 보면 공무를 핑계로 한 여행이었다. 작년부터는 마땅한 명분도 없이 매월 한 차례 해외에 나갔다. 안 지사는 정기적인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간부들에게 기자 브리핑을 시켜놓고 자신은 본인이 하고 싶을 때만 했다. 도지사 기자회견이 대통령 기자회견만큼이나 보기 힘들었다.

충남도민들은 안 지사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국회 국정감사라도 있어야 도지사가 뭘 하고 다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작년 말 충남도에 대한 국감에선 안 지사의 농촌방문 횟수가 2015년 15건에서 2016년 5건으로 줄고, 외부 특강은 9건에서 25건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공개됐다. 외부 강의의 3분의 1은 정당 행사였다. 국회의원들의 지적에도 안 지사는 “농민들을 위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둘러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도지사이면서도 도민과 도내 민원의 현장보다는 대학생들과 정치판을 찾아가는 데만 열심이었다. 더 큰 권력에만 관심이 있었다. 충남도의회가 이런 문제를 비판했지만 그의 안중에 도의회는 없었다. 도의회가 열리는 동안 도지사가 해외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의회에 대한 무시였다. 충남도의회의 한 의원은 “안 지사의 독선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안지사 사건, 감시 시스템 사라진 지방권력 부패의 경고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돼 있다. 남성 도지사가 젊은 여성을 수행비서로 채용하는 것 자체가 부패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고였다. 이 일을 누군가 문제를 삼고 비판했더라면 그 여성이 외국 출장까지 따라다니며 당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도청 공무원들은 여성 수행비서 채용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수군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신문 가십에라도 반드시 보도될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안 지사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지방의 제왕’이었다. 안 지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국의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 가운데 상당수는 안 지사처럼 해당 지역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시도지사를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중앙에선 진영 논리 때문에라도 보수정권은 진보 언론에서 감시하고 진보정권은 보수 언론에서 견제한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지방권력에 대한 견제 시스템은 무너져 있다. 

지금 지방은 너무 썩어 가고 있다. 인사도 사업도 ‘지방권력’ 맘대로다. 인사철에는 승진을 앞둔 공무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지방의 크고 작은 사업이 자치단체장과 업자의 이권사업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번 사건은 ‘미투운동’과정에서 터져 나왔지만, 무소불위의 지방권력이 가져오는 지방권력의 비리와 부패에 다름 아니다.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은 한번 뽑히면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 한 4년 임기가 보장된다. 그러나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비리와 부패의 핵심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부패’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안 지사가 출현할 것이고 지방은 더 썩어갈 것이다. 지방은 지금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번 사건의 장본인은 안 지사지만 넓게 보면 지방권력의 부패를 말해주는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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