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안희정의 재의요구와 이재관의 재의요구가 다른 이유

이재관 대전시장 권한대행(왼쪽)과 안희정 충남지사. 자료사진.
이재관 대전시장 권한대행(왼쪽)과 안희정 충남지사. 자료사진.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일 도의회에서 통과된 ‘충남도 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26일쯤 재의결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지방지치법상 자치단체장은 이송 받은 조례안에 이의가 있으면 20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해야만 하기에, 더 이상 미뤄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재의요구를 하게 되면, 공교롭게도 대전과 충남의 광역의회 의장 책상 위에는 집행부의 재의요구서가 함께 놓이게 된다. 대전시는 지난 12일 도시공원위원회의 공무원 당연직 축소를 담은 ‘도시공원 및 녹지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 재의 요구서를 시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처럼 대전과 충남 광역의회 의장 책상 위에 집행부 재의요구서가 동시에 놓여있는 것은 그리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의 의결이 월권이거나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는 경우’, ‘예산상 집행할 수 없는 경비를 포함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으로 단체장의 재의요구 남발을 제한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단서가 없다 하더라도, 집행부의 재의요구는 의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으로 해석되고 있다. 집행부가 대의기관의 결정에 불복의사를 밝히는 고도의 정치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어느 한쪽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에, 집행부와 의회가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적 승패가 힘의 우위로 갈리진 않는다. 안 지사가 인권조례와 관련해 재의요구를 한다 해도, 의회 다수파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굴복시킬 방법이 없다. 지난 2일 인권조례 폐지 당시에도 재석의원 39명 가운데 37명이 투표해 무려 25명이 폐지안에 찬성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힘으로 밀어 붙이면, 안 지사도 달리 도리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안 지사나 한국당 의원들이나 모두 잃을 것이 없다. 안 지사는 ‘인권을 중시하는 리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어서 좋고, 한국당 의원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지지를 얻어낼 수 있어서 좋다. 패자가 없는 게임이다.    

대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집행부의 토건정책에 의회가 제동을 걸었는데, 집행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전시는 ‘자치단체 집행권을 의회가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이유로 재의를 요구했지만, 의회가 어떻게 월권을 했는지, 무슨 법령을 위반했는지, 공익을 어떻게 해쳤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민간공원 특례사업 추진의 핵심 키를 쥔 도시공원위원회에 대전시 국장급 간부공무원이 무려 5명이나 참여해 의사결정권을 독식하고 있으니, 의사결정권을 민간에 좀 양보하라는 취지가 조례 개정에 나선 의회의 요구다. 대전시는 재의요구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책임을 질 수장이 없다는데 있다. 시장 궐위 중인 대전시는 권한대행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의회가 집행부 재의요구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의결사항은 확정된다. 이 경우, 선출 권력인 집행부 수장은 응당 정치적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전시엔 상처받을 리더십이 없다. 선출권력에게 통제받지 않는 행정의 일방통행만 존재할 따름이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에 도전할 인물의 제1덕목은 고삐 풀린 행정 권력을 통제할 마부형 리더십”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행정권력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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