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그들이 스스로 만든 조례를 폐기한 이유

지방의회 의장석.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자료사진.
지방의회 의장석.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자료사진.

충청권 지방의회가 ‘누워서 침 뱉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이 제정하거나 개정한 조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정치적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충남도의 인권조례, 대전시의 도시공원 조례 폐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의원들이 이처럼 자기부정을 한 이유는 각각 다르다. 충남도의회는 자신들이 발의하고 제정한 인권조례에 대해 보수단체 등이 격렬히 반발하자, 조례안을 폐기시켰다. 충남도가 재의(再議) 요구를 했지만, 도의회 다수당인 자유한국당은 단 한 명의 대오이탈 없이 조례안 폐지를 관철시켰다. 

자신들이 직접 발의하고 통과시킨 조례안을 이처럼 폐기시킨 목적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읽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보수 결집’을 시도하겠다는 의도다. 충남지역 일부 기독교계와 보수 진영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폐기를 촉구해왔다. 

인권조례 유지를 적극 주장해 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 의혹으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자, 거리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안희정=인권조례’라는 등식을 부각시키며, 인권조례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합목적성을 일거에 부정했다. 

자기부정에 나선 것은 대전시의회도 마찬가지다. 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던 이른바 ‘도시공원 조례 개정안’을 스스로 폐기시켰다. 시의회 마지막 회기에 도시공원 민간특례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집행부에 큰 선물을 던져 준 셈이다. 

마찬가지로 조례개정의 합목적성은 무시됐다. 민간특례사업 심사권한을 지닌 대전시 도시공원위원회에 대전시 고위간부가 5명이나 참여해 의사결정권을 독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의회는 조례개정으로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공무원 당연직 참여를 2명으로 제한하고 외부전문가 의견을 더 많이 경청하라는 취지였다. 

가뜩이나 시민단체 반발에 추진동력을 잃고 있는 대전시는 조례개정을 수용하지 않고 재의요구를 했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였지만, 의회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는 만큼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의회는 집행부 재의요구안을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조례개정안 폐기를 수용했다. 집행부를 견제하기 보다는 돕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의 정체성과 어긋나는 길을 선택했다는 뒷말이 당장 흘러나왔다.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는 특정 의원을 거론하며 낙천·낙선운동에 나서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원들야 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렸다고 스스로 위무할 수 있겠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전시의원들은 과연 어떤 변명을 꺼내 놓을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충남도의회와 대전시의회의 이 같은 ‘자기부정’은 지방의회가 다수대중의 여론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편협한 정파성이나 지방권력과의 친소관계에 의해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정치인은 선거공간에서 표로 심판받는다. 지방의원들은 심판의 계절이 전혀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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