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열네번째 이야기] 총선 앞둔 ‘보수결집용’ 아니길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 제공.

10년 전, 이 나라 대통령은 뜬금없는 ‘통일 대박론’을 들먹였다. 당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 중에는 ‘통일비용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나’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생각한다.”

정초부터 대통령 입에서 튀어나온 ‘통일은 대박’ 발언에 분명 물음표가 달렸다. 하나는 ‘통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였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어쩌면 경박스럽게 들릴 수 있는 ‘대박’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의문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제안과 북핵 문제 해결이란 부연 설명으로 어느 정도 풀렸지만, 두 번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에선 검찰 발(發)로 비선 실세였던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 작품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당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보던 최 씨가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딱딱한 말이 아닌,  젊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로 고쳐줬는데 ‘통일 대박’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든, 10년 전에도 국정 최고 권력자는 ‘통일’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현재 대통령이 ‘통일’을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105주년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미독립선언 정신을 다시 일으켜 자유를 확대하고, 평화를 확장하며 번영의 길로 나아가, 그 길 끝에 있는 통일을 향해 모두의 마음을 모으자”고도 했다.

현충일도 아니고, 6.25도 아니고, 3·1절에 ‘통일론’이라니. 3·1절은 보통 일본을 향한 메시지가 강하게 나와야 하는 기념일 아닌가. 독도 영유권이나,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관계는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양국 관계로 한 단계 도약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요즘 ‘남북통일’은 군대나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어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젊은 이들은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을 만큼 ‘딱딱한 말’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역시 3.1절 기념사에서 “통일은 우리 혼자서 이룰 수 없는 지난한 과제”라고 인정했다. 

현재 남북 교류는 문재인 정부 이후 뚝 끊겼다. 북한과 소통 창구가 사라진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다. 남북 교류의 심장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은 문을 닫은 지 수년째이고, 공단 내에 있던 연락사무소는 폭파됐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며 무력 시위를 이어가며 우리 정부를 힐난하고 있다. 아무런 소통 노력이 없는 적대적 상황에서 이번 윤 대통령 연설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 연대와 북한 주민 인권 개선, 탈북민 지원 등 일장 연설에서 한 ‘통일’이란 단어가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멀고도 생뚱맞게 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40일 남은 총선을 앞두고 ‘보수 결집용’ ‘신(新)북풍론’이라는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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