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백 일흔일곱번째 이야기] 모내기 철은 가고, 선거철이 온다

지난 7일 충남 부여 모내기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일행 모습. 대통령실 제공.
지난 7일 충남 부여 모내기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일행 모습.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자신의 ‘뿌리’로 일컫는 충청을 찾았다. 충북 청주에서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착공을 축하했고, 충남 부여에선 이앙기에 올라타 모를 심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지역 행보에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사회와 소통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정작 충청도민들은 대통령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 방문 전후 지역에서 나온 얘기는 한 마디로 “선거 때가 왔구나” 였으니. 윤 대통령이 모내기하러 부여에 왔을 때, 익숙한 인사들이 따라왔다. 

대통령실이 배포한 현장 사진 가운데 정진석 의원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단연 돋보였다. 지역구 의원과 도백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왜? 부여가 농업지역이라? 청년 농업인들과 만남이 시민사회 수석실 소관이니까? 그렇다면야 ‘명분’은 있다. 

다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맨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두 사람 모두 내년 총선 때 천안과 홍성·예산에 출마할 거란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을 대동한 배경에는 윤 대통령 의중이 깔렸을 수도 있겠다. 정진석 의원과 김태흠 지사는 ‘동네’에서 권세를 확인하고, 참모진에는 ‘꽃길만 가라’는 복심이었다면.

과거 청와대를 출입하던 시절 어느 참모가 “대통령의 지역 방문은 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VIP가 지역을 내려갈 때는 ‘챙겨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벼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모내기는 5월에 끝난다고 들었다. 늦모내기가 있다곤 하는데, 6월 모내기는 생경한 장면이었다. 

가만, ‘부여’라는 정치 지형을 살펴보니 그럴 만 싶다. 공주·청양과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구면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부여군수)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준 곳. 재선에 성공한 박정현 군수가 정 의원의 잠재적 대항마인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 ‘절친’이라는 점, 내년 총선에서 정 의원의 ‘험지 출마설’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다는 점. 

이런 정치공학적 상황을 대입하면 윤 대통령이 부여에 다녀갈 일은 차고 넘친다. 굳이 윤 대통령 부친의 고향이 공주가 아니라도 말이다.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의 지역 방문 의미 중 하나가 ‘균형발전’이었다면, 청주에서 착공식 버튼만 누르고 갈 일이 아니었다. 부울경이 못 이룬 ‘메가시티의 꿈’을 살리려는 충청권에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해야 했다. 

윤 대통령이 농업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었다면, 모심고 막걸리에 새참만 먹고 갈 일은 아니었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이후 정부가 어떻게 농업(인)을 먹여 살릴 건지,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농업군(郡)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희망’을 심었어야 했다. 

전농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은 윤 대통령 방문 시간에 맞춰 피켓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쌀값 문제 해결은 가루쌀 생산이 아니라 수입쌀 중단이 해답’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보여주기식 행사’에 치중하다 보니 “선거철이 왔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그날, 윤 대통령이 부여에 온 ‘진짜 이유’는 뭘까. 총선이 오늘로 딱 열 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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