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찰스 디킨스가 쓴 변화의 희망

세종시청 4층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책 표지 디자인. 세종시청, 더스토리 출판사 제공.
세종시청 4층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책 표지 디자인. 세종시청, 더스토리 출판사 제공.

[한지혜 기자] 세종시가 한글사랑도시를 선포하며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얼마 전 이춘희 시장은 한글을 바르고 폭넓게 사용하는 데서 나아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민주적 리더십을 계승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도 선언했다.

세종을 섬기는 도시에 연말을 맞아 캐럴이 흐른다. 시청 앞에는 나눔을 상징하는 희망의 온도탑도 설치됐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축복이 가 닿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축복의 날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외와 무관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가 출자한 지방공기업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고 있는 세종도시교통공사 전 노조위원장과 먼지 날리는 지하차도를 계약직 신분으로 매일 오가는 21명의 터널노동자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지방공기업이 파업을 이끈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수 억 원의 혈세를 지출하고 있지만, 제동 거는 이가 없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공사 측은 시의 묵시적 동의를 등에 업고, 국내 3대 로펌을 내세워 항고했다.

15년 경력의 버스기사가 반 신용불량자 처지가 된 건, 한쪽에만 무한한 관용이 베풀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파업한 버스기사들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이해하려고도 노력해봤지만, 이런식의 반노동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죠.” (전 노조위원장 A 씨)

민간 용역 터널노동자에게도 올해 겨울은 유난히 시리다. 이들은 몇 개월 전, 업체와 2년 짜리 새 근로 계약을 체결했다. 공무직 전환 심의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바람에 여전히 계약직 신분을 면치 못했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지역의 터널노동자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시는 지하차도, 교량 등 LH로부터 이관 받는 시설물이 많아지자, 업무 이관을 위한 용역을 실시했지만, 이는 본청 업무 덜어내기의 일환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고용 신분에 관한 논의는 ‘별개의 일’로 선을 그었다.  

동화는 동화라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짜 의미

크리스마스 하면 늘 소환되는 동화가 있다. 1843년 초판 발간된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세월을 버티며 외롭게 살아온 스크루지 영감은 책에서 유령들을 만나며 친절함과 용서, 자비를 베푸는, 누구나 즐거워야 하는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스크루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가난하지만 어린 조카다. 조카는 저기압인 스크루지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한껏 들떠서 이야기한다.

“일 년 이라는 많고 많은 날 중 모두가 닫힌 마음을 활짝 여는 유일한 날,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 무덤까지 함께 갈 길동무로 여기는 날. 크리스마스가 제게 동전 한 닢 생기게 해주진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마다 전 기뻐요.”

잃어버렸던 진짜 행복을 되찾은 스크루지는 이야기 말미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고마움을 표하고, 직원의 월급을 올려주고, 빈곤한 이웃에게 말을 건다. 디킨스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나눔이 아닌, 변화의 가능성이다.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대문호 디킨스가 전한 희망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엔 소외된 노동에도 관용이 가 닿는 뜻밖의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동화는 환상일 뿐이고, 고대하던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모두 우르르 현실로 돌아올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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