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김영남 주무관
현장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실무자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김영남 주무관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김영남 주무관.

스무 살 무렵이면 누구나 한번 쯤은 품어 봤던 생각. '집에서 가장 먼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청년은 20대를 대전에서 보내고, 30대는 서울로 활동 반경을 넓혔으며, 40대 초반인 지금은 다시 대전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김영남 주무관의 얘기다.

여성운동을 만나고 치열하게 활동했던 시간

김 주무관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2004년부터 대전여민회 활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총여학생회 활동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진로였지만 '여성들의 삶은 왜 그래야만 할까?'라는 의문은 어린 시절부터 떠나지 않았다.

“중학생 때 동네 골목에서 갓난아기를 업은 아이 엄마가 남편한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것을 봤어요.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도 가정사라며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그때 당시 집안 분위기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했고...왜 그래야만 하는지...부당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후 대전여민회에서 성매매 피해여성과 한부모 가정 여성들을 지원했던 활동은 김 주무관 스스로 인생을 배우고 진한 자매애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시기라고 평했다.

“대학 동창이 성매매 피해 상담자로 찾아 온적도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첫 직장이 그런 곳이 아니었더라면...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 갔을 거에요. 많은 여성들이 한 순간의 어긋남으로 가족과 단절되고 주민등록조차 말소됐으며 말할 수 없는 폭력과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구조적 문제였던 것을 깨달았죠.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삶과 비슷한 이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성매매 피해 여성과 한부모 가정 여성들을 만나고 지원했던 것은 여성들이 겪어내야만 하는 젠더 폭력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진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일상 속 여성주의를 꿈꾸며

2012년까지 대전여민회 활동을 한 김 주무관은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여성운동 밖에서, 일반공동체에서도 성평등을 고민하고 실현해보고자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석사 논문도 ‘풀뿌리 여성운동을 통해서 본 여성주의 시민성에 관한 연구’였다.

그는 서울 ‘함께일하는재단’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마을공동체 업무를 보다가, 서울시 행정에서도 근무했다.

“그동안은 여성운동 테두리 안에서 실질적으로 바로 지원이 필요한 여성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면, 일반 공동체에서도 어떻게 여성이 주체적으로 대표성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냐는 고민이 있었던 거죠.

서울에서의 생활은 시민과 행정의 협치를 경험하고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절차와 예산 확보, 시민참여의 가치 등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역에서 다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현장 활동가뿐만 아니라 행정 경험자라는 경력으로 김 주무관은 지난해 9월부터 대전시 성인지담당관실에서 근무 중이다.

“대전여민회에서 8년 여를 배우고 성장했으니 기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서울로 가버려 조금 빚진 마음(웃음)도 있고, 서울에서 접한 사례와 관계망들을 지역사회에서 풀어내 보고 싶어서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게 됐죠”

현재 김 주무관은 시정 전반에 있어서 어떻게 성평등을 실현할지 고민이다. 인권과 마찬가지로 성평등도 보편적 가치로서 교통과 환경 등 모든 정책을 성평등 관점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지만 행정은 조직 특성상 유연하지 못하고 순환 인사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업무의 연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현장의 역량도 더 다양해지고, 강화되어야 한다.

“성주류화를 위해서는 교통, 환경, 문화 등 모든 정책 분야를 성인지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의 성평등 정책역량 강화도 필요하고요. 성주류화 정책이 2000년도 초반부터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성평등 정책 하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앞으로 행정은 점점 더 오픈되고 시민들이 참여해 결정하는 협치나 거버넌스도 고도화될 것으로 봐요. 그러면 성평등 관점에서 정책을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설계도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다른 시·도의 여성가족재단 등과 같은 성평등정책추진 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게 김 주무관의 생각이다.

‘페미니즘→여성우월주의’는 오해

최근 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양궁 선수를 놓고 불거진, 일명 ‘페미’ 논란에 대한 질문도 던져 봤다.

김 주무관은 제대로 페미니즘을 학습하거나 이해해보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또 이를 부추긴 언론과 정치권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페미니즘은 곧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죠.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려면 기득권과 가부장제와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고,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겠죠. 이것을 여성우월주의, 남성 혐오주의로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제가 생각하고 배운 페미니즘은 모두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에서 자기다움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주무관은 공감과 소통을 강조하며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권김현영·휴머니스트)’와 ‘김지은입니다(김지은·봄알람)’라는 두 권의 책을 추천했다.

“공감과 소통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되잖아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다른 성(여성)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여전히 어떠한지 이해할 기회가 될 수 있고, 페미니즘이 만들어온 새로운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용도 어렵지 않아 접근하기 쉽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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