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행정수도 세종시 건설의 자화상

세종시 반곡동 소재 관세평가분류원 점자 안내판. 171억 원을 들여 청사를 지었으나, 무리하게 이전을 추진하다 무산돼 빈 공간으로 남았다.
세종시 반곡동 소재 관세평가분류원 점자 안내판. 171억 원을 들여 청사를 지었으나, 무리하게 이전을 추진하다 무산돼 빈 공간으로 남았다.

유령청사 관세평가분류원(이하 관평원) 논란은 LH 사태를 똑 닮았다. 이들의 사례는 법망을 피해 잠재력이 큰 부동산을 취득하고 시세 차익을 얻은 것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의 공공 개발 이익이 결국 국가의 녹을 먹는 공공기관 종사자에 의해 사유화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이전도 않고 특공을 받아 챙긴 관평원 직원들과 가짜 사무실을 내 특공 대상 확인서를 받은 대전 소재 민간 기업 임원들, 세종과 대전의 기관을 끌어 모아 통합사옥을 지으며 특공 자격을 얻은 한전 사례까지. 허술한 법령 때문에 취지에서 벗어난 혜택을 받은 기관이 수두룩하다.

같은 시간, 신도시 개발로 터전에서 쫓겨나 새 둥지를 튼 원주민들은 단돈 몇 만 원 오르는 임대료가 버거워 피켓을 들어야 했다. 이주자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램마을 7·8단지 주민들은 임대료와 보증금 인상에 반발하며 수 개 월 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들의 처지는 곧 도시 개발의 이익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자화상이다. 법과 절차에 맞게 제도를 활용했는데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냐”며 억울하다는 이전 기관 직원들의 토로는 원주민의 삶과 비교하면 분명히 그 무게가 다르다.

이들 뿐일까? 개발 이익의 수혜는커녕 울며 겨자 먹기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동면 송성리 주민들이다. 시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쓰레기 처리 용량이 부족해지자, 새 폐기물 처리장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민들은 악을 쓰며 반발하고 있지만, 막다른 골목에 선 시도 정면 돌파 태세를 갖췄다. 

행정수도 호재라는 명목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마음 졸여야 하는 전세난민 가구, 보증금 부담을 줄이고자 반전세로 살다 분양 전환을 앞두고 옆집보다 2배 많은 분양가를 고지 받은 공공임대 아파트 임차인 역시 부동산 급등에 따른 역피해를 떠안은 자들이다.

개발의 몸통, 본분 망각한 특공제도

세종시 이주민 아파트 도램마을 7·8단지 주민들이 임대료와 보증금 인상에 반발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세종시 이주민 아파트 도램마을 7·8단지 주민들이 임대료와 보증금 인상에 반발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특별법 제정 시점인 2003년 기준 행복도시 건설비용은 총 8조 5000억 원, 현재 물가로는 13조원이 넘는 액수다.

국민들은 공공 주도, 공공택지를 기반으로 조성되는 사업에 작은 기대를 건다. 민간 주도 방식에 비해 적어도 천문학적인 초과 이익은 내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초과 이익의 일부는 이곳에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다.

정부가 LH에 많은 권한을 주고, 국민들이 공기관에 신뢰를 보여준 이유는 그간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저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부동산 정책의 취지(공공성)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본분을 망각한 공기업 직원들의 행태는 충분히 괘씸죄를 불러일으킬 만 하다. 

이전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공급된 세종시 아파트는 총 2만 6163가구다. 5년 전, 전매 금지 기간에 불법으로 아파트를 처분해 수 천 만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55명이 기소됐고, 특공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도 1순위 자격을 얻어 두 채를 소유한 사례, 선출직이나 장·차관의 특공 막차 행태 등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도시개발의 이익 분배 구조는 공직자와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더 유리했다.

‘빠른 도시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이를 묵인한 책임은 도시 건설 주체에 있다. 주거 안정을 위해 특별공급제도가 존재해야 한다면, 10년, 20년 공무원 장기임대 주택을 건설하면 되고, 개발로 갖게 된 공직자들의 불로소득은 사업시행자나 토지소유자에게 적용되는 개발부담금과 비슷한 제도를 신설해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힌 돌들이 도시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동안, 여전히 살지도 않는 사람들, 사는 척만 하다 떠날 사람들이 도시의 개발 이익을 사유화하고 있다. 특혜이자 특권이 된 특공제도를 폐지하는 수준으로 손질하지 않는 한, 이제 성난 민심은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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