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대덕구에서 출발한 ‘김제동 강연논란’ 그 뒷이야기

김제동 페이스북
김제동 페이스북

방송인 김제동이 ‘좌편향’으로 낙인찍힌 것도 모자라, 자치단체 초청 강연에 나가 강연료를 받은 것까지 ‘탈탈’ 털리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당 차원의 전수조사에 이어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거론하고 있다.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하며 제 할일조차 안하는 공당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일 일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보수성향 거대언론들도 논란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 다음으로 김제동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김제동을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 심지어 방송인의 방송출연까지도 문제 삼는 이유는 뭘까. 정치판을 떠나 사실상 방송인이 된 유시민은 되고 김제동은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대전 대덕구에서 출발해 전국 이슈가 돼 버린 ‘김제동 논란’의 근원을 고민해 봤다. 

그리고 해답을 영화의 한 장면에서 발견했다. 영화 ‘기생충’을 아직 관람하지 못한 독자들께 먼저 사과드린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불가피해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류계급이 하류계급을 확인하는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다. 바로 냄새다. 가짜 명함과 가짜 졸업장과 엉성한 거짓말에 잘도 속아 넘어가는 순박한(?) 상류층 사람들에게도 직관의 힘이 존재했다. 자신들은 전혀 맡아보지 못했던 반지하방의 냄새가 그것이다. 자신들과 다른 ‘냄새’. 뭐라 형언하긴 어렵지만 ‘우리와 저들’을 구분하는 그 냄새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는 김제동에게서 '반지하방'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정치성향은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통해 평가받기 마련이다. 김제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좌편향으로 평가하려면 최소한 그의 행동과 말, 어느 구석이 좌편향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집회의 사회를 봤다거나 촛불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특정 이념을 설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김제동의 말과 행동 중 어디에서 이데올로기를 읽었는지, 오히려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김제동의 언행을 문제 삼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41% 국민들을 모두 ‘좌편향’으로 몰아붙일 생각이 아니라면, 이 또한 과장된 논리다. 미국의 대표적 방송인이자 민주당 열성 지지자인 오프라 윈프리를 두고 미국사회에서 ‘정치편향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던가. 윈프리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인일 따름이다.    

고액강연료 논란도 마찬가지다. 김제동이 자치단체 초청강연에서 1000만 원, 1500만 원, 2000만 원을 받으면 안 되고, 유명 아이돌 그룹이 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축제에 초청돼 수 천만 원, 수 억 원을 받아도 되는 이유가 있을까. 인간 김제동이 아닌 ‘방송인 김제동’은 그 자체가 상품이다. 소속 기획사는 김제동을 상품으로 파는 기업이다. 기업과 시장논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기업과 시장을 부정하는 모순된 주장이 나오는 이유를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가 김제동을 초청해 세금을 낭비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치인 단체장의 홍보를 위해 대중 연예인이 동원되고 세금이 투입됐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고 재정여력이 없는 자치단체가 국비를 확보해 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 복지는 국가나 자치단체가 마음 내키면 하는 일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시각이 절실하다. 

대전 대덕구와 같은 지방의 청소년들에게 김제동을 만날 기회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뒤늦게 확인한 사실이지만, 김제동은 강연료 전액을 지역에 기부하고서라도 청소년들과 약속을 지키려 했다고 한다. 전액 기부의사를 대덕구에 전해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논란이 아니라는 점을 고민하면서 행사취소를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덕구 관계자에 따르면 김제동은 강연장 앞에서 빚어질 수도 있는 어른들의 거친 항의와 실랑이를 우려했다고 한다. 적어도 청소년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김제동의 걱정이었다. 때문에 강연을 취소하는 대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덕구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후원하고 싶다는 뜻도 전해 왔다고 한다.

이쯤 되면 ‘좌편향 방송인’ 김제동이 청소년들에게 끼칠 해악이 큰지, 김제동을 좌편향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어른들의 정치적 공격이 청소년들에게 끼칠 해악이 큰지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사상과 이념을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판단해 낙인을 찍는 사회. ‘냄새’와 같은 직관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사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영화보다 더 기괴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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