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일곱 번째 이야기]흥행 못하는 정치, ‘봉준호 신드롬’에서 배울 교훈
‘기생충’은 허구지만, ‘반지하’는 현실이다

방송인 김제동과 봉준호 영화감독. 자료사진
방송인 김제동과 봉준호 영화감독. 자료사진

8개월 전 일이다. 정치부장이 ‘카톡’을 보냈다. “기생충 봤어? 꼭 봐.” 그래서 본 영화가 전 세계를 놀래 켰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평등의 내면화’와 ‘연대의 불가능성’이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 문제로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봉 감독과 그의 작품이 빛을 보기까지는 정치적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봉 감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고, 그의 작품들은 ‘반지하’ 취급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4+1협의체’를 비판하며 언성을 높였다. “민주당과 그에 기생하는 군소정당은 정치를 봉준호 감독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정치판의 기생충’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기생충>이 칸에 이어 오스카상까지 휩쓸자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봉 감독의 작품성을 극찬했다. 한국당 대변인은 “앞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논평했다. 한술 더 떠, 봉 감독 고향인 대구에서는 총선 출마 후보들이 앞 다퉈 ‘봉준호 공약’을 내거는 ‘블랙코미디’를 찍고 있다.

<기생충>을 본 계기는 따로 있다. 지난해 6월 대전의 한 대학에서 열릴 예정이던 김제동 토크콘서트가 취소됐다. 행사를 추진했던 대덕구는 지원 받은 국비로 주민들에게 문화행사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당 소속 구의원들은 김 씨를 “좌편향 방송인”이라고 낙인찍었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을 겨냥해선 “학생과 구민에게 특정 정치이념을 주입하려는 음모”라는 색깔론을 폈다. 또 대덕구의 열악한 재정자립도를 운운하며 강연료가 고액이라고 비판했다. 김 씨는 거듭된 논란에 강연을 취소했다.

이 ‘웃픈’ 해프닝을 칼럼으로 썼다. 김 씨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먹고 살기 어렵게 만든 정치 집단이 누구였나. 그리고 ‘가난한 동네’에 살면 유명 방송인 강연은 언감생심이란 말인가. 그제야 정치부장이 왜 꼭 <기생충>을 보라고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치적 가치관과 이념은 옳고 그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같거나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여야, 좌우, 진보와 보수 공동의 화두이자 책무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삼는 3류 정치가 아닌, ‘나와 다른 너’를 존중하는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정치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해법은 ‘연대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리려는 노력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영화에서처럼, ‘반지하’와 ‘2층집’을 통해 표현한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쌍방향 창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이 2층 집에 살게 됐다고 반지하 생활을 금세 잊었거나, 반지하로 내려가서도 여전히 2층집에 사는 줄 착각하는 정치권에 영화가 던진 메시지다. ‘기생충’은 허구이지만, ‘반지하’는 현실인 까닭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