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2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6.13지방선거 이후 대구 시내에 내걸린 자유한국당 후보자 당선사례 현수막.
6.13지방선거 이후 대구 시내에 내걸린 자유한국당 후보자 당선사례 현수막.

무작정 나선 길은 아니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나만의 시간을 갖겠노라 다짐했거든요. 선거기간 저도 모르게 흩어졌을 마음을 다잡고, 에너지 충전도 할 겸 ‘나 홀로 여행’을 작정했습니다.

지난 18일과 19일, 1박 2일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40년을 넘게 살면서 대구 땅은 한 번도 가보질 못했거든요. 권다현 여행 작가는 대구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구는 여행지를 고민할 때 선뜻 떠오르는 도시가 아니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대구행 기차에 올랐을 때 목적지를 묻던 이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이었다.’《나 홀로 진짜 여행》(지식너머, 2015)

낯선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함께 동기부여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번 지방선거 결과와도 연관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전국에서 자유한국당이 그나마 체면치레한 곳이 TK(대구‧경북)였습니다. 이른바 ‘보수의 심장’을 직접 둘러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청와대 출입기자 몇 명과 식사 자리에서 대구 여행 계획을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혹시, 대구가 진보의 본령이었다는 사실 아세요? 지금은 보수의 근거지라고 하지만, 과거 대구는 진보에게 상징적인 곳이었지요. 이번 선거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지만 격차는 상당히 좁혀질 겁니다. 좌우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겁니다.”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대구가 진보의 본산이었다고요?”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대구 정치사를 검색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들은 대로 대구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요새라고 할 만큼 ‘저항의 도시’였습니다.

‘1907년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을 시작으로 1946년 미군정에 맞선 10월 항쟁, 1960년 4.19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 등 굵직한 사건이 모두 대구에서 발생했다.’(2016년 8월 시사인 466호 발췌)

대구의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그 형 박상희가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출신이었고요. 현대 정치사에 있어 대표적 용공조작으로 기록된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도 대구의 아픈 상처입니다.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대구가 어쩌다가 보수의 본산이 된 것일까요.

지난 5일자 <한겨레21> ‘박정희로 시작해 박근혜로 막 내리나’ 기사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대구 보수는 1961년 5.16쿠데타와 직결돼 있다. 박정희 세력이 지역감정을 이용해 집권의 토대를 닦고, 그것을 기득권으로 여겨 무한정 유지하려고 했다. 박정희가 시작이고 박근혜에서 끝을 보이고 있다.’

그렇습니다. 대구가 보수의 성역이 된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지역구도 프레임이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달랐습니다. 보수의 성역이 완전히 붕괴되진 않았지만, 심하게 흔들리고 요동쳤습니다. 대구의 시대정신은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기초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45명의 당선자(자유한국당 53명)를 배출했습니다. 한국당이 전승가도를 달리던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4곳에서 깃발을 꽂았습니다.

중구 근대문화거리에 있는 이상화 시인(1901∼1943)의 고택을 들렀습니다. 충남 아산 맹사성 고택이나 예산의 추사고택과는 또 다른 예향(藝香)이 풍겼습니다. 아무래도 시대적 상황이 앞선 두 분이 살던 때와는 달랐으니까요. 고택 처마 밑 마루에 앉아있으니 단출하면서도 넉넉하고, 고요하면서도 위엄 있고, 겸허 속에 아련함이 밀려왔습니다. 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개벽) 시비(詩碑)는 마당 한쪽 석류나무 두 그루 사이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 저항시인의 숨결을 교과서나 시집이 아닌, 고택에서 직접 체감하면서 또다시 대구 정치사와 이번 지방선거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한국당은 이번 선거에서 대구만큼은 지켰노라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달라 보입니다. 대구는 좋아서 보수를 택한 게 아니라 정권의 무서움에 시대정신과 정체성을 빼앗긴 들판이었습니다. 이제, 그 빼앗긴 들에 봄기운이 깃든 겁니다. 대구의 민심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면서 이미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이상화 고택 바로 옆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바보 주막’이라는 막걸리 집이 있습니다. 5년째 이곳에서 ‘봉하 막걸리’를 팔고 있는 협동조합 ‘다문’ 신수정 이사와 꽤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녀의 출생지는 전북 무주입니다만, 어릴 적 대구로 이사와 42년을 살고 있는 ‘대구 시민’입니다.

신 이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옳고 그름의 문제였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에 실망한 민심이 한국당과 홍준표에서 터진 것이지요. 시대의 흐름과 정신을 읽지 못하는 정치는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상화 고택 마당에 세워진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시비(왼쪽)와 고택 옆에 자리한 바보주막 안에 붙은 ‘대구의 밝은 미래를 위한 호소문-이제 대구를 바꿉시다!' 대자보.
이상화 고택 마당에 세워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왼쪽)와 고택 옆에 자리한 바보주막 안에 붙은 ‘대구의 밝은 미래를 위한 호소문-이제 대구를 바꿉시다!' 대자보.

식당 한쪽 벽에 붙은 대자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의 마지막 날 대구의 앞날을 걱정하는 각계 1033명이 쓴 글이라고 적혀 있네요. ‘대구의 밝은 미래를 위한 호소문-이제 대구를 바꿉시다!’라는 제목인데요. 마지막 문단만 옮겨보겠습니다.

‘4.13일 대구시민이 지혜로운 시민이란 걸 보여줍시다. 인물보다는 오로지 한 정당만 찍는 ’묻지마 투표‘ 자세를 버립시다. 일당 일색의 대구가 아니라 여당 색깔과 야당 색깔이 어울리는 컬러풀한 대구를 만듭시다. 고인물이 아니라 샘물을 마시는 대구를 만듭시다. 그리고 경제가 살아나는 대구, 우리의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가 잘 사는 대구, 희망이 넘치는 일류 도시 대구를 만듭시다. 꼭 투표합시다.’

숙소로 이동하던 택시 안에서 20년째 운전대를 잡았다는 기사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암만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정서는 남아있지 않겠능교. 그래도 우리 세대에서 좀 끝나야 하지 않겠어예. 한국당도 이번을 계기로 정신을 채렸으면 싶고예.”

힐링을 위해 떠난 ‘나 홀로 여행’이 결국은 ‘르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또 ‘쓸 것’ 하나 건져왔습니다. 기자는, 노는 것도 일입니다. 아 참, 혼자 떠난 여행길 어땠냐고요? 그건 직접 다녀온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여러분도, 떠나보세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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