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들이 꺼낸 '험한 것'은 근거없는 '반일 민족주의'다

영화 '파묘' 스틸컷. (주)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 스틸컷. (주)쇼박스 제공

영화가 어느정도 흥행가도를 달리고 난 뒤에 입을 열 요량이었다. 평론가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오컬트 '수작(秀作)'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굳이 초를 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4일 기준, 파묘는 영화진흥위 추산 851만명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이제 좀 '딴지'를 걸어도 될 시점이라고 봤다. 

개봉 초기 아무런 스포일러 없이 이 영화를 만났을 때, 일제가 민족의 혈을 끊기 위해 명산마루에 박았다는 '쇠말뚝'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뭔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스쳐갔다. 저널리즘 관점에서 '쇠말뚝의 실체'에 대해 강렬한 취재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을 마비시킨 집단최면의 주술, 쇠말뚝

2005년 말이니,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당시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명산마루에 혈침, 즉 쇠말뚝을 박았다는 것이 일반에 상식처럼 통용됐다. 공영방송의 앵커가 스튜디오에 '쇠말뚝'을 들고 나와 일제의 만행을 성토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졌다. 

여기저기서 쇠말뚝 뽑기 행사가 이어졌고, 어김없이 언론이 달려들어 일제의 만행을 성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전국을 돌며 쇠말뚝을 뽑는 단체가 있었고, 이 단체의 회장이 '일제 쇠말뚝'이라고 하면 그냥 그런 것이었다. 과학적 근거나 검증 따위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월간 말] 기자였던 당시, 이 단체 회장을 집요하게 인터뷰하고 그의 주장을 검증하는 방식의 취재를 이어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쇠말뚝을 일제의 풍수침략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진실보다는 허구에 가까웠다. 

쇠말뚝 뽑기 단체 회장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너무 오래된 일이고, 그에게도 잊혀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회장이라고 칭한다. 

당시 A회장은 "일제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처형당하기 전에 조선 땅 전역에 모두 365군데의 혈침을 박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야마시타가 처형당하기 전 조선인 통역관에게 털어 놓은 사실이고, 통역관의 아들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사료 등 취재에 따르면, 야마시타 변호인단은 승전국인 미군 장교들이 맡았고 변호인단에 조선인 통역관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A회장은 서울대 AMS 연구실에 의뢰해 방사성 탄소연대측정을 했고, 관련 쇠말뚝이 일제시대 제련된 철이라는 주장도 폈다. 객관적 증거가 있음을 주장했다. 당연히 해당 연구실에 진위 여부를 물었다. 

당시 연구실측은 여러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며 "공업적으로 제강된 철의 경우, 탄소연대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회장의 두 번째 거짓도 그렇게 확인됐다. 당시 문화재연구소 연대측정실도 과학적 방법으로 연대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A회장의 주장은 위와 같은 내용과 다른 다양한 현장취재 등을 통해 논파됐다. 그러나 '쇠말뚝'은 실체가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2013년 세종시 전월산에서 발견한 쇠말뚝. 일부가 일제의 소행임을 주장했다. 자료사진.
 2013년 세종시 전월산에서 발견한 쇠말뚝. 일부가 일제의 소행임을 주장했다. 자료사진.

세종시 한 복판에서 벌어졌던 '쇠말뚝 촌극'

2005년 첫 취재 후 7년이 흐른 시점인 2013년 2월, 세종시 한 복판에서 또 쇠말뚝 논란을 마주했다. 2013년 2월 세종시 주산인 전월산에서 쇠말뚝 뽑기 행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행사 주최측은 다름아닌 A회장이 이끌고 있는 그 단체였다. 세종시 공무원과 시의원, 지역원로까지 참석했다. 당시 모 지역방송은 "정부청사를 감싸고 있는 곳이라 일제가 박아 놓은 게 맞다면 제거가 시급하다"고 단독보도에 나서기도 했다. 

쇠말뚝의 실체를 또 쫓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은 '실체 없음'으로 드러났다. 전월산을 뒤져 찾아낸 쇠말뚝은 군부대에서 유격훈련을 위해 로프를 매서 사용하기 위한 쇠말뚝이었다. 시멘트블록의 잔해에서 축조년도를 의미하는 '1988. 6. 13'이라는 숫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일제 쇠말뚝'은 촌극으로 끝났다.   

'쇠말뚝을 통한 일제 풍수침략설'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차례 논파됐다. 

장재현 감독이 파묘에서 '쇠말뚝의 실체'에 대해 고영근(유해진 분)과 김상덕(최민식 분)의 설전 장면을 배치하면서 고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유해진이 "99%가 가짜"라고 주장하던 그 장면이다. 

감독이 '쇠말뚝'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으면서도 '쇠말뚝을 실체'로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는 나름의 탈출구를 마련한 것으로 엿보인다.  

문제는 대중의 실체 논란이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경제적 수탈 등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비판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객관적이고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를 촉구해야지, 이미 논파된 '쇠말뚝'을 들고 이념논쟁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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