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할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나의 40대는 움직임이 많았다. 모임도 많았고 만나는 사람도 다양했고, 외부적인 활동도 많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할 정도로 외부적인 일에 몰두했었다. 사람들이 마냥 좋았다.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고 즐거워했고 행복했다. 그런 외부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 가정에 많이 소홀했다. 나의 빈자리를 남편이 많이 채워주었다. 남편에겐 늘 고맙고, 자녀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런 움직임(활동)은 40대 중반에 종점을 찍었다. 박사 공부를 시작했었고, 사람 관계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화 증상으로 여러 번의 시술도 받았었다. 그런 과정에서 문학회와 목욕 봉사 모임만 제외하고 모든 활동과 모임을 정리하게 되었다. 모임이 정리가 되니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문득 생각이 날 때면 그때의 활동이 마치 꿈이었고, 소꿉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문학회 활동도 여러 번 탈퇴를 시도했지만 나를 끝까지 붙잡아 주셨던 분이 김○○ 회장님이셨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고마움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박사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자기분석, 학회 참여, 목회상담, 개인 슈퍼비전, 임상훈련까지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리만큼 바빴었다.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 몇 번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내적· 외적으로 힘든 일이 너무나 많았었다. 그 과정 중에서 여러 번의 시술을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9학점을 이수하였고 심리학전공 박사를 졸업하였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니 현실은 더 힘들어졌다. 취업하려고 여러 군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이미 내정자(內定者)가 있어서 나의 서류를 그들을 합격시켜주기 위한 들러리였다. 그리고 박사를 채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한동안 멘붕상태와 좌절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박사과정 중에 개인 분석, 교육 분석 등 ‘나를 보는 훈련’을 혹독하게 하면서 너무 괴롭고 아팠던 날들이 조금씩 나를 찾는 과정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가 상담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과정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참 고맙다.

정신분석가 칼 융이 말하는 ‘인생의 오후’ 지점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내면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자신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내향적인 나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그런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소라게처럼 속으로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을 하면 얼굴이 쉽게 달아올라 어찌하지 못하는 나를 자주 보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책망하지 않고, ‘그게 나인걸’ 편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많이 성장한 내가 참 기특하고 감격스럽다. 

우리는 대상(사람)을 통해서 나를 본다. 결국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성찰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최근 몇 개의 모임을 지인을 통해서 가입하게 되었고 스스로 찾아간 모임도 생겼다. 낯설고 어색하고 익숙해질 때까지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몇 해를 보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게 버텨보고 싶다. 여기서 버틴다는 것은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긍정의 의미가 크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버티는. 애쓰는 상황에 있고 싶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끈기도 약해지고, 기억력도 감퇴되는 느낌도 있고, 무언가 새롭게 도전하려는 의지도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새롭게 환경을 부여해주고 싶다. 어쩌면 즐거운 호기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에너지의 분산을 조절할 수 있어서 새로운 만남과 시작이 축복으로 다가온다.

지금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어떤 모임이든 자기 성향과 심하게 맞지 않는다면 탈퇴하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다면 당장 모임이 나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견뎌보면서 유지하는 것도 배움의 과정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견디지 않고, 늘 도망자처럼 삶을 회피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런 내 자신이 나에게 너무 미안했었다는 감정이 올라오곤 했다. 

지금의 나를 성장시켜 준 것은 ‘사람’이었다. 나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결국 내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 나를 끊임없이 응원해주고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그래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대자연이 무한히 내어주는 사랑 덕분에 나 또한 내가 지닌 기질적 성향과 함께 더 많은 선한 영향력을 뿜어내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이 내 것을 포기함으로써 자유롭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 믿기 때문이다. 새롭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보려 한다. 나는 자신에게 하루하루 진실하며 충실할 것을 선택했다. 이 또한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탄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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