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우리는 자기 자신이 온전히 진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 안에서는 그 사실을 묵인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묵인하는지도 모르면서 ‘진실하다’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즉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것과 돈을 빌릴 때 행동과 갚을 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오히려 돈을 받아내는데 애간장을 태우고 결국 못 받는 경우를 자신이 경험을 했거나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그 사람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사람이 사기치냐? 돈이 사기치지!’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최고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자신 또한 속임수에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이런 상황 등은 자신이 다급해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급박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펼쳐질지를 상상해보라. 우리는 그 순간 최고로 진실하며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과의 신뢰가 때론 허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숱한 약속을 하고, 언약을 맺고, 또 그것을 지키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가.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신은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대하는 타인이 10% 정도의 신뢰만 가지고 자신을 대한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인간은 믿음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까? 이것은 100명이 모인 장소에서 100명의 사람이 자신을 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쩌면 한 명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싫어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사람 간의 관계, 그리고 관계 안에서의 신뢰는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편향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신과의 친밀도에 따라 편향성은 높다고 보여 진다. 

우리에게 편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뒤틀리면 그 마음마저도 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각 개인의 도덕성, 인격,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완고하게 믿는 사람들에게, 혹은 사람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과 같은 것이다. 

흔히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하려고 할 때 그와 상응하는 물건(직장의 종류, 자산, 토지, 건축물 등)이 어느 정도 있느냐에 따라 대출금액도 달라지고 신용등급도 매겨진다. 또한 세금과 카드 사용 비용을 미루지 않고 잘 냈는지에 따라서도 신용등급은 달라진다. 이것은 은행뿐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교원평가가 있으며 학생들이 매 학기 마지막에 교사(교수)를 평가하는 설문지가 있다. 흔히 교사(교수)가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사람처럼 행동하더라도 실력이 좋으면 그 사람을 학습적인 부분에서는 신뢰하게 된다. 때로는 실력을 인정하고 신뢰를 하다 보니 독특한 성격도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이든, 물건이든 평가에 준하는 신용도가 매겨진다. 

회사에서의 신용은 일을 해내는 능력, 성실성, 책임감 등으로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동료 간의 관계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었다. 즉 일만 잘하면 동료 간의 소통이 없어도 굳이 불편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피상적인 관계를 서로가 원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저마다의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따라 신용의 기준은 평준화보다는 주관적이게 된다. 어떤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 경우 우리는 이미 측정해 놓은 신용도를 신뢰하게 된다. 근거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그 조차가 의심이 되는 경우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기도 한다.

한가지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일상생활에서 들이대는 잣대가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그 잣대가 상황에 따라 바뀐다면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가? 진실과 신뢰는 공중부양이 된 채로 자신에게 유리한 이기적인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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