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의 100대산 도전기] 백두산 북파에서 본 천지

백두산 북파에서 본 천지. 그 장엄함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백두산 북파에서 본 천지. 그 장엄함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백두산 북파 표지석에는 등소평이 직접 쓴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백두산 북파 표지석에는 등소평이 직접 쓴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소용돌이(필명) 일행은 10월 28일 백두산 서파를 통해 천지를 각자의 눈과 마음에 담았다. 벅찬 감격과 기쁜 마음을 안고 하산한 뒤 이틀 연속 백두산 천지를 보기위해 산에 올랐다. 이번에는 북파.

1442계단을 올라야 하는 서파와 달리 북파는 천지 앞까지 봉고차 정도의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그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소용돌이 일행은 전날처럼 29일 아침 일찍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파에 오를때처럼 소지품 검사를 마친 뒤 2번 갈아타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 전날의 환희를 기억하며 이틀 연속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차에 올랐다. 

다만 전날과 다른 것은 차량의 도착 지점이다. 서파 방향은 1442계단을 오르기 직전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북파 방향은 거의 정상까지 간다는 것. 대략 10~12인승 가량인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오르막길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운전기사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였지만, 능숙한 운전솜씨를 발휘하며 줄줄이 차량을 운행했다. 말그대로 곡예운전이었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백두산 중턱에 다다랐고 서서히 북파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도착한 북파 주차장에는 먼저 온 관광객들이 서둘러 천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북파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2~3분 가량만 걸어가면 될 정도로 가까웠다. 접근이 쉬워서인지 전날 서파쪽보다 인파가 더 많이 몰렸다.

북파 주차장. 관광객들이 타고 온 봉고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북파 주차장. 관광객들이 타고 온 봉고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백두산 북파에서 본 만주 벌판.
백두산 북파에서 본 만주 벌판.
백두산 북파는 해발 2620미터다.
백두산 북파는 해발 2620미터다.
수많은 관광객들.
수많은 관광객들.

소용돌이 일행도 관광객들속에 섞여 발걸음을 옮겼다. 쌓인 눈을 밟으며 잠시 걸어가던 중 앞 쪽에서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천지를 본 것이다. 소용돌이 일행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천지 앞으로 갔다.

말그대로 환상이었다. 서파에서 본 천지는 그 규모면에서 웅장하고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면, 북파에서 본 천지는 봉우리 사이에 있다보니 봉우리를 양쪽에 둔 한폭의 그림이었다. 같은 천지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소용돌이 일행은 관광객 틈에 끼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북파쪽도 서파처럼 천지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었는데 중국 주석을 지낸 등소평이 직접 쓴 글짜도 새겨져 있었다. 표지석에 등소평이 1983년 방문했을 당시 남겼다는 기록도 담겨 있다. 

전날처럼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흰 눈이 덮인 백두산,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천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비록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눈이 쌓여 통행에 다소 어려움도 있었지만, 천지의 모습을 본 순간 그 어떤 것도 모두 용서되고 잘 될것만 같았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현지 가이드도 천지에 오르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꼭 해야 할 것들을 안내했는데 전날 서파 쪽에서는 하지 못했던 행동을 했다. 바로 천지를 보고 기도하는 것. 소용돌이 일행은 태극기를 펼치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천지를 보면서 두 손 모아 각자의 마음속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대부분 자녀의 대학 입시 등 진로에 대한 소원을 비롯해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다. 

녹연담.
녹연담.
백두산 북파를 오르 내리는 봉고차들. 운전기사들은 곡예운전을 하며 1분 1초라도 빨리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백두산 북파를 오르 내리는 봉고차들. 운전기사들은 곡예운전을 하며 1분 1초라도 빨리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남북 통일을 빌었다고 말해 일행을 놀라게 했다. 그의 바람처럼 남북이 통일된다면 백두산 천지도 중국쪽이 아닌 우리의 땅에서 언제든지 마음껏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영험한 기운이 가족은 물론 한민족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면서 남북 통일 뿐 아니라 백두산 처럼 세계속에서 우뚝 솟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틀 연속 백두산 천지를 본 것에 대한 여운을 북돋은 것은 현지 가이드였다. 전날 서파에서 천지를 봤을 때는 3대가 덕을 쌓았다고 하더니 이틀 연속 천지를 본 뒤에는 5대가 덕을 쌓은 사람들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지를 보기 위해 백두산을 찾지만, 소용돌이 일행처럼 이틀 연속 천지를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백두산 천지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인데 소용돌이 일행은 이들 연속 맑은 날씨속에 천지를 알현했다.

기쁨 마음을 안고 하산한 뒤 장백폭포로 향했다. 천지의 물이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장백폭포는 추운 날씨 탓에 주변은 얼었지만, 중앙부분은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긴협곡을 따라 장백폭포에 오르는 동안에는 바닥에서 온천수가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었다. 내심 온천수에 손을 담그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어서 참았다.

소용돌이 일행은 장백폭포에서 흘러 내려오는 천지수를 조그만 생수통에 담아 먹으려고 했더니 가이드가 손사래를 치면서 반대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산성인 온천수가 섞여 있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백폭포를 통해 내려오는 물에 손만 담근 뒤 먹는 것은 포기하고 녹연담을 거쳐 백두산 여행을 마쳤다.

아쉬운 점은 백두산에 트래킹 코스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오랜 시간을 백두산에서 머물며 그 장관을 직접 발로 걸을 수 있다는 바람에서다. 현지 가이드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하니 "오래전 장백폭포에서 북파까지 트래킹 코스가 있었는데 안전 문제 등 때문에 없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3박 4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어떤 여행보다 뜻깊고 평생 추억에 남을만한 시간이었다.

장백폭포 입구에는 백두산의 중국 측 명칭인 장백산을 안내하는 홍보판이 세워져 있었다. 
장백폭포 입구에는 백두산의 중국 측 명칭인 장백산을 안내하는 홍보판이 세워져 있었다. 
자연온천. 장백폭포에 오르는 계곡에는 자연적으로 온천수가 올라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연온천. 장백폭포에 오르는 계곡에는 자연적으로 온천수가 올라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장백폭포.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장백폭포는 얼지 않는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장백폭포.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장백폭포는 얼지 않는다고 한다.
계곡에는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천지수와 온천수가 함께 흐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계곡에는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천지수와 온천수가 함께 흐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장백폭포 계곡.
장백폭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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