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출판기념회'라는 정치 행사의 허와 실

오는 12월까지 출판기념회 소식을 알린 대전 지역 총선 출마 예상 후보들의 행사 안내문.
오는 12월까지 출판기념회 소식을 알린 대전 지역 총선 출마 예상 후보들의 행사 안내문.

출판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22대 총선이 5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 대전 정치권에 신간이 쏟아지고 있다. 자서전부터 에세이까지 정치인들은 저마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비전을 내놓는 책이라 홍보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책이 아니라 ‘출판기념회’라는 정치 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얼굴을 알리면서 선거 자금을 모으는 데 이만한 행사는 없다. 정치신인에게는 최대 홍보 수단이고, 현역 의원들은 지지세를 과시할 수 있는 장이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돈은 한도 규정도, 내역 공개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과세 대상도 아니어서 순수하게 현찰을 챙길 수 있다.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법적 규정은 ‘선거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는 게 전부다.

책값이 '봉투'로 전달되는 관행도 여전하다. 정가보다 많은 액수를 내고, 과도한 양의 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지자들과 지역 유력인사, 피감기관 관계자, 이익단체뿐만 아니라 현역 의원 행사인 경우 공천권이 달려있는 시‧구의원들까지. 단골손님은 어디나 비슷하다.

국민들이 출판기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는 이처럼 합법을 가장한 정치자금 모금 수단이라는 이유 때문이리라. 

규제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14년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려면 관할 선관위에 신고토록 하고, 정가 이상으로 책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 의견을 내놨다.

이후 여야 모두 법 개정을 약속하고 법안까지 발의했지만, 결국 폐기됐다. 2018년에도 한 차례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선 논의조차 없었다.

잠시 변화의 물결이 감지된 때는 2014년 즈음. 당시 책값 대신 받은 쌀화환을 소외계층에 기부하거나 책 정가만 받기 위해 ‘돈봉투’ 사용을 없앤 사례,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지 않고 책 소개와 함께 판매루트만 소개한 사례, 1인당 1권의 책값(1~2만 원)만 받은 사례, 온라인 출판기념회, 책 판매 대신 지역민을 초청한 정책콘서트를 연 사례 등이 있었다.

이들 사례는 자정 차원이 아니라, 현역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3,9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 지금은 이런 작은 노력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후원금을 음성적으로 모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이는 편법이 아닌 '법으로' 풀 문제다. 현재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정치 후원금 모금 한도액은 평년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3억 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4년 이후 금액이 상향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역시 정치신인의 처지와 비교하면 말그대로 '부르주아'다.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혁신을 외치는 예비후보자들. 무형의 영혼을 한 권의 책으로 유형화하고자 지금도 피땀흘리고 있는 작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출판기념회는 '진짜 글쓰는' 이들의 행사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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