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지난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지난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1980년대 초까지 충남 금산군에는 ‘화전계(火田係)’가 있었다. 기능을 다한 화전계를 폐지하고 ‘인삼계(人蔘係)’로 바꾸는데 도에서 승인했다. 시군의 기초 조직인 ‘계(係)’를 조정하는데도 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 시군 실과 이상 조직 설치와 6급 이상의 직렬을 조정하는데도 도에서 승인했다. 나름의 이유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으나 지나친 규제라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인건비 총액 범위 안에서 행정 기구 설치, 변경과 정원 책정, 직급, 직렬 조정은 일정 부분 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이 지방자치를 수행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확대와 더불어 조직에 관한 자율성을 확대는 지방자치단체의 오랜 요구였다.

지난 10월 27일 대통령 주재로 경북도청에서 열린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 조직권 확대 등의 방안이 논의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자율과 책임이 조화되는 자치조직권 확충 방안, 지방시대 실현을 위한 자치입법권 강화 방안 등이 보고, 의결되었다.

이번 조치의 핵심 내용은 시도, 시군구의 ‘국(局)’ 설치에 자율성 부여, 일부 시도 소방본부장 직급 상향, 일부 기초자치단체 부단체장의 직급 상향이다. 현재 시도, 시군구의 국 설치 수는 인구수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행정이 단순히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행정 수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앞으로 시도, 시군구의 국이 2~3개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시도는 행정자치부장관, 시군구는 시도지사와 협의를 거쳐 설치하는 한시 기구를 자율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된다. 지역별 특성과 시기적으로 발생하는 행정 수요에 대처한 행정기구를 탄력적으로 설치,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군구의 부단체장 직급은 인구수에 따라 정해지고, 인구수의 증감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현재, 인구 50만 이상은 2급(이사관), 10만 이상은 3급(부이사관), 10만 미만은 4급(서기관)으로 규정되어 있다.

대전, 충남의 경우 천안시는 2급이고, 대전시 5개 구, 충남 6개시와 홍성군 등 7개 시군은 3급이며, 충남 계룡시와 나머지 6개 군 등 7개 시군은 4급이다. 이 가운데 부단체장이 4급인 시군의 경우 실·국장, 보건소장, 농업기술센터소장 등 직속 기관장과 동급으로 지휘 체계상 불합리한 면이 있다.

실제 주로 상급 기관에서 전출 보임되는 4급 부단체장과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4급 실·국장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지휘통솔에 어려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보다는 부단체장의 업무량과 다양성 등으로 볼 때 2~3급인 시도의 실·국장보다 업무 범위가 넓고 책임성 또한 그 못지않게 막중하다. 따라서 이번 직급 상향 조치는 매우 적절하다.

다만, 기구설치의 자율성 확대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혹시 방만한 기구설치와 위인설관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중앙 정부에서 엄격한 기준을 주거나 승인, 협의제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치조직권 확대와 직급 상향은 지방자치권 확대에 큰 수단의 하나라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지방자치를 수행하는데 자치조직권이 소프트웨어라면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

작은 것 하나를 예로 들면 현수막 설치, 제한 등에 관한 것조차 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면에 관심을 두고, 지방자치에 대한 우려를 앞세운 획일적 규제, 후견인의 관점에서 벗어나 진일보한 지방자치, 성숙한 지방자치 수행역량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중앙부처 소속 특별지방행정기관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기능과 중복되거나 지자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과감하게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여 업무의 현지성과 효율성을 기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권한과 사무의 중앙 집중 완화와 지방자치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단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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