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나는 한 때 신뢰를 엄청 중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자의든, 타의든 신뢰를 깨버린 적이 있었을 것을 생각해 보면, 살면서 신뢰를 내가 생각할 만큼 엄청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에 빠져본 적도 있었다. 이럴 때 나는 나에게 말한다.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이 너무 빠지지 마세요.라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신뢰가 한번 깨지면 절대로 처음과 같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한두 번은 처음처럼 신뢰할 수는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관계 안에서 서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신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깨진 그릇을 아무리 강력 본드로 접합한다고 해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만큼 신뢰를 얻는 것은 때론 쉽기도 하고 때론 어렵기도 하지만, 깨진 신뢰는 어렵다 못해 다시 건널 수 없는 강과도 같을 때가 많다. 

신뢰가 깨지는 경우가 다양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가? 신뢰할 수 없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 ② 돈을 자주 빌려서 갚지 않는 경우, ③ 이간질을 잘하는 경우, ④ 자기의 실속만을 챙기는 경우, ⑤ 보살펴준다고 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경우, ⑥ 타인의 지식을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경우, ⑦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 ⑧ 타인을 배려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결과적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경우, ⑨ 어떤 이유로 깨졌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 ⑩ 공적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⑪ 배려가 없고 무례한 경우, ⑫ 공감이나 감정이입이 어려운 경우, ⑬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학벌을 따지는 경우를 발견했을 때, ⑭ 자유분방하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우, ⑮ 상황에 따라 말을 자주 바꾸는 경우, ⑯ 똑같은 상황에서 차별을 받았을 때 등이다.

위 16가지 이외에도 더 많을 것이다. 16가지 이유 중에서 자신의 문제가 타인에게 전가(투사)되는 경우를 탐색해보면 신뢰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도 ‘신뢰’에 대해서 조금은 가볍게, 수용하는 자세로 달라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뢰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내가 깰 수도 있고, 타인이 깰 수도 있다. 또한 자의적이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른 불편한 관계 속에서 깨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모임 안에서 말을 전하려고 전한 것이 아니고, 친교를 맺기 위해서 모임에서 들었던 말을 가볍게 던졌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경험이 있었다. 어쩌면 그 내용이 당사자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가 불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관계 안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충분한 배려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 또한 말을 던진 사람의 욕심임을 알았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말이 아니면 꺼내서도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모임 안에서 곪아서 터져야 하는 일들이 있을지 몰라도 잘못 전달했던 말 한마디로 신뢰도 잃고, 그동안 곪았던 것들이 터지면서 실없는 사람이 된 경험이 있었다. 참으로 낯 뜨거웠다.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면 이런 의도치 않는 실수로 아쉬운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 없다. 

지금 현재 나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또는 다양한 관계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신뢰는 한쪽만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30년간 우정을 쌓아왔더라도 한순간 무너지는 것이 신뢰이기도 하다. 어쩌면 신뢰는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면서 상대적일 수 있다. 타인이 믿어주는 만큼 믿어주거나 그 이하로 믿음이 없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신뢰’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만큼만 믿는, 즉 자신이 이로운 쪽으로 움직여주는 변덕스러운 마음의 일종이 아닐까 한다. 또한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에게만이라도 당당한 신뢰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신뢰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신뢰도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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