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우리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이다. 그래서 국가는 초⋅중등학교에서 운영하여야 할 학교 교육과정의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사회는 IT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정보 혁명의 시대이며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디지털 혁명이라고 한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디지털적 세계와 결합하여 빅 데이터에 통합시키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와 함께 지식과 정보, 기술의 전수를 학교가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학습 기술이 발달하면 학교는 존재 자체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과정의 변화가 절실한 때이다. 지금 과연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입시제도에 의해 좌우된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미래 사회에서 잘 적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대학교 입시의 ‘공정’이라는 기치 아래 저마다 의견이 난무한다. 그래서 내신과 수능을 붙잡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변별력을 높여 아이들의 성적을 대학 서열대로 맞춰 세울지만 생각하는 것 같다.

또 한 번의 입시제도 개편 방안이 나왔지만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었다. 심지어는 퇴보하였다.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내신에서 절대평가를 하면서 대학들의 서열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미래 비전의 교육개혁에 대한 기대는 무산되었다.

지난 10월 10일 교육부는 올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될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였다. 개편 시안에서는 2028학년도 대입 수능부터 국어, 수학, 탐구에 선택과목을 없애고, 2025년부터 고교 내신을 모든 과목에 걸쳐 5등급 상대평가로 개편하기로 했다. 또, 수능 과목은 기존 44개에서 24개로 대폭 축소된다.

수능을 공통과목으로만 출제하면 입시 부담을 줄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현행 수능시험에서 국어와 수학 영역은 공통과목과 함께 선택과목 중 한 과목을 응시하면 되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은 선택과목 중 최대 2과목을 응시하면 되었다. 하지만 국어 영역만 하더라도 공통과목(독서·문학)과 화법과작문, 언어와매체 중 한 과목을 선택해 두 과목만 응시하던 것이 공통과목인 화법과언어, 독서와작문, 문학을 모두 대비해야 한다.

현재 고교 교과는 1학년이 주로 배우는 공통과목과 2∼3학년에서 진로·적성에 따라 배우는 일반선택 과목과 진로선택 과목이 있다. 진로선택 과목에는 성취도 기준 A∼C등급만 매기는 절대평가를 하고 있고 공통과목과 일반선택 과목(예체능 제외)에는 9등급 상대평가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통과목은 물론 모든 선택과목에 A∼E 5단계 절대평가와 함께 석차를 기준으로 한 5등급 상대평가가 도입된다. 절대평가를 하기로 했던 내신 평가를 상대평가하기로 한 이유로 교육부는 교사와 학부모가 수용할 만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또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해소하고 입시 체계의 안정성을 꾀한 조처라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방향을 틀어도 좋은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안 발표 후에 한 사설입시업체(종로학원)가 곧바로 실시한 학부모 여론조사를 보면 학부모 1085명 가운데 83%가 개편안의 영향으로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의 선호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신 상대평가를 현행 9등급 체계에서 5등급으로 완화하면 학생들의 내신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능이 더 중요해지고, 성적 상위권 학생이 몰려드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내신에서 불리한 단점도 지금보다 더 해소될 수 있게 된다. 결국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뀌는 내신보다는 변별력이 높은 수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또 문·이과 구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수능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과목은 ‘수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편 방향으로 이득을 누리게 된 집단은 누구일까? 당연히 질 높은 선행학습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무장된 고소득 상위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2028학년도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일정 과목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로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이 치르는 첫 대입인 만큼, 획일적인 줄 세우기인 상대평가와 같은 고질적인  교육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028 대입 개편안이 내신과 수능 모두 상대평가를 통한 변별력을 유지하는 형태로 나오면서 줄 세우기 방식의 대입 경쟁은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부의 의지가 읽힌다. 

2019년부터 이어온 서울 상위 16개 대학의 정시 40% 정책으로 인해 나타난 폐해를 살펴보자. N수생이 빠르게 늘기 시작해 2024학년도 수능 원서접수에서는 졸업생과 검정고시 출신의 N수생 비중이 35%(17만 7942명)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수능만 잘 본다면 지방대에서 서울의 대학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는 지방 인재를 싹쓸이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서울지역 대학의 정시 40% 선발이 재수생 양산과 지방대 외면의 주범이 된 셈이다. 대학 진학에 몇 년씩 허비하는 청년들의 사회적 비용과 그들의 좌절에 따른 고통을 생각해 보라. 

입시정책 하나가 가져온 폐해를 살펴보면 만약 이 시안이 그대로 굳어진다면 어떠할까? 자사고 특목고 입학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초등학교에서부터의 선행학습 열풍만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내신에서 논‧서술형 평가에서 상대평가를 병기하기로 한 부분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역량을 키우겠다고 도입한 평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게 된다. 왜냐면 상대평가에서는 답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담이 존재하면 교사들은 서술형 시험에서 명확하고도 분명한 답안이 나올 수 있도록 출제할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답안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신에서 논‧서술형 평가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와는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수능은 5지선다형 객관식에 9등급 상대평가이며, 내신에서도 상대평가가 존재한다. 더욱이 내신에서의 논‧서술형 도입 또한 상대평가로 인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결국 현재의 입시 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고등학교에서의 입시경쟁을 부추기자는 것이 이 개편 시안의 골자다. 2028 대입 개편안은 그러잖아도 어두운 우리 교육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에서 또다시 저출산의 요인만 하나가 더 추가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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