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기 변호사의 법률톡톡]

송문기 변호사.
송문기 변호사.

더운 여름날, 공판기일에서 15:30에 시작한 증인신문(증인이 4명이었다.)이 18:00에서야 끝나니 필자도 기진맥진하게 된다. 원체 격무를 버티고 계셨을 검사님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위해 몇시간 내내 증인들을 주시하고 계셨을 판사님께서는 나보다도 더욱 고생하셨을 듯하다.

통상 법정드라마 등을 통해 의뢰인이 재판 과정에 관해 가지고 있는 환상, 즉 ‘치열하게 논박하고 서로 증거를 제시하며 열변을 토하는’ 그런 웅변가적인 모습을 재판에서 보게 될 일은 사실 별로 없다.

특히나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실제 법원에 출석하여 변론이 진행되는 변론기일이 열리기 전에도 이미 원고·피고들이 미리미리 준비서면 및 서증을 제출하면서 상당히 공방을 진행한다. 또한 민사사건에서는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변론기일 전에 미리미리 원고·피고 양 당사자에게 중요한 쟁점이나 의문점에 관하여 석명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민사사건의 증인신문은 형사사건에서의 증인신문만큼 치열하지는 않다. 물론 사안마다 달라서, 한 달쯤 전에는 울산에서 있었던 민사 항소심 증인신문을 마치고 의뢰인이 내게 ‘변호사님이 화통하셔서 참 좋다.’는 말을 했는데, 할 말은 하는 성격도 나름 도움이 되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형사사건의 경우에도 피고인에 관한 공소사실을 입증할만한 직접적인 물증이 이미 제출된 상황이라면 증인신문이 그렇게 치열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도리어, 피고인에 관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제출된 상황이라면 변호인으로서는 피고인의 무죄를 다투기보다 재판부의 양형에 관하여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피고인에 관한 공소사실을 물증이 직접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정황 및 진술 등에 의존하여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경우에 증인신문이 상당히 가열되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고인의 행위사실을 입증하는 물증(CCTV, 영상, 증거물 등)이 없어서 정황증거 및 이에 부합하는 진술에 주로 의존하여 기소가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오늘 변호인인 필자와 같이 출석한 피고인 및 증인신문과정을 보러 온 피고인의 지인들이 직접 보았듯이(또한 만족하였듯이) 고발인이나 기타 피고인의 행위를 알고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서 증인신문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각자에게 유리한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검사와 변호인이 증인에게 순차적으로(또한 경쟁적으로) 신문하기도 하고 법정 가운데로 걸어나와서 증거를 화상기기에 띄워 제시하기도 하게 된다. 즉 앞서 얘기한 의뢰인이 재판 과정에 관해 가지고 있는 환상, ‘치열하게 논박하고 서로 증거를 제시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검사나 피고인이, 출석한 증인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실제로 오늘 첫 증인에 대하여 주신문을 시작하던 검사님께서는 첫 증인에게 피고인 및 증인의 호칭부터 정리해주면서 조곤조곤 증인신문을 진행하셨다. 증인의 증언을 듣고난 뒤 증언에 모순점이 있다는 등 증인에게 식은땀이 흐르도록 예리한 질문을 하는 것은 검사나 변호인 각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는 직무상 의무이고 프로의 태도이다. 그러나 증인신문 과정에서 지나치게 모욕적인 태도를 보이면 재판장님께서 제지할 수 있다. 심지어 피고인이 그렇게 모욕적인 질문을 증인에게 한 경우에는 재판 결과에 불이익이 온 사례(참고 1) 가 최근에 하나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여하튼 재판의 결과 자체는 모를 일이다. 필자는 의뢰인인 피고인에게 최대한 솔직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고, 의뢰인은 변호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했다. 의뢰인이 필자에게 말해준 내용에 배치되는 물증이 보이지 않는 이상 필자 또한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을 믿고 최선을 다해주어야 한다.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어제 의뢰인과 만나 사실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어떤 내용으로 증인신문을 할지 의논한 다음, 의뢰인이 만족할 정도로 오늘의 증인신문을 격렬히 진행하였으니, 향후로도 최선을 다하여 결과를 받아볼 뿐이다.

참고 1: “수습과 남친 카톡 대화 몰래 빼낸 변호사…징역 6월 실형” 제하의 연합뉴스 기사(2023-09-03 09:03, https://www.yna.co.kr/view/AKR20230902001000004) 본문을 보면 “재판부는 (...) "피고인의 변명으로 피해자가 부득이하게 법정에 증인으로 서야 했고 재판장의 제지에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인신공격적이고 모욕적인 질문을 반복했다"고도 덧붙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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