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권한 이양과 가치 지향의 발견

영국 에든버러 구시가지 로열마일 거리 축제장 모습. 프린지 페스티벌 참여 공연자가 직접 공연 포스터를 건네며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대전시 공동취재기자단 제공.
영국 에든버러 구시가지 로열마일 거리 축제장 모습. 프린지 페스티벌 참여 공연자가 직접 공연 포스터를 건네며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대전시 공동취재기자단 제공.

‘2023 영국 에든버러 축제’가 폐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1947년 처음 열린 이 축제는 이제 ‘전 세계, 모든 이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 처음 열린 ‘대전 0시 축제’는 에든버러 축제를 모티브로 삼았다. 축제가 끝난 직후 에든버러로 향한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곳에서 내년 축제를 위한 변화를 모색했다. 

영국 에든버러 축제와 0시 축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축제를 주도하는 ‘주체’에 있다. 시행 초기인 0시 축제는 전적으로 관 주도로, 에든버러 축제는 투 트랙으로 진행되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IF), 프린지 페스티벌(EFF) 모두 민간이 이끌고 있다.

공식 무대에 서지 못한 공연자들이 자생적으로 무대를 선보이면서 시작된 프린지 페스티벌은 축제 시작 후 10년이 지난 1957년부터 프린지협회(Festival fringe society)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축제 백미로 꼽히는 세계 군악대 공연인 ‘밀리터리 타투’ 역시 비영리단체가 전적으로 맡아 운영한다. 한달 관중이 30만 명에 달하는 메인 공연 수익을 다시 지역 내 여러 민간단체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은 니콜라 베네데티 총감독(36)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다. 역사적으로 보면, 축제 총감독은 초기 오페라단, 국립 발레단 단장을 역임한 인물부터 타국의 축제 기획에서 성공을 거둔 문화행정가, 연주자 등이 맡아왔다.

특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수준 높은 예술가의 무대를 보러오는 관람객들의 기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축제에 속한다. 축제 총감독인 예술감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행자 위주 ‘로열마일 거리’, 도시 전체가 무대로

.영국 에든버러 축제 기간 지역 대학 내 캠퍼스 공간은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 관람객 편의시설로 활용된다. 사진은 대학 내에 조성된 축제장 모습. 대전시 공동취재기자단 제공.
.영국 에든버러 축제 기간 지역 대학 내 캠퍼스 공간은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 관람객 편의시설로 활용된다. 사진은 대학 내에 조성된 축제장 모습. 대전시 공동취재기자단 제공.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메인무대인 로열마일(The Royal Mile) 거리는 0시 축제장인 ‘옛 충남도청사~대전역’ 구간처럼 차량 통행이 제한된 '보행자 위주 축제장'으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곳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무대가 펼쳐진다. 

열린 무대인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은 공연팀이 직접 인근 대학 캠퍼스 공간, 작은 소극장 등을 예약해 무대를 꾸미기도 하고, 직접 카페나 식당 공간을 빌려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만 300개에 이른다.

반면,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공연은 여건이 제대로 갖춰진 주요 공연장을 중심으로 열리기 때문에 관람 만족도가 안정적이다. 이중 어셔홀(Usher Hall)은 1914년에 건축된 공연장으로 뛰어난 음향설비를 갖추고 있어 오케스트라 공연팀이 선호하는 무대로 꼽힌다. 

페스티벌 극장(Festival Theatre)에서는 주로 오페라와 발레공연이 열리고, 1929년 영화 상영을 목적으로 지어진 에든버러 극장(Edingburgh Playhouse)에서는 뮤지컬과 음악공연이 주로 진행된다. 

퀸즈홀(Queen’s Hall)은 약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공연장으로 1823년 교회 건물로 건축됐으나, 1979년 리모델링을 통해 공연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축제 기간 에든버러 도시 전체는 공연장으로 바뀐다. 저녁 시간대 진행되는 밀리터리타투 공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낮 시간대 관광객들은 도시 곳곳의 공연장으로 분산돼 크게 혼잡하지 않다.  

대전도 원도심 곳곳에 위치한 소규모 갤러리, 작은 공연장, 보존된 근대건축물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이 경우, 무더운 낮 시간대 실내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하루 종일 관람객들을 도시에 머물게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0시 축제가 지향해야 할 가치

영국 에든버러 축제장을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이 길가에 부착된 한국 초청작 '헬로, 더 헬:오델로' 연극 포스터를 보고 있다. 대전시 제공.
영국 에든버러 축제장을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이 길가에 부착된 한국 초청작 '헬로, 더 헬:오델로' 연극 포스터를 보고 있다. 대전시 제공.

올해 에든버러 축제의 주제는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Where do we go from here?)였다. 미국의 흑인해방운동가이자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 암살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의 제목에서 차용한 문구다.

올해 주제는 평등과 정의, 포용 등의 가치를 내세웠던 그의 생을 테마로 코로나19 이후 ‘공동체 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콘텐츠 만큼 중요한 점은 ‘가치 정립’이다. 향후 0시 축제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도 차차 해나갈 필요가 있다. 대전의 경우, 0시 축제의 변하지 않는 브랜드가 될 ‘0’이라는 숫자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수월해 보인다.

영국 에든버러 축제 벤치마킹을 다녀온 이장우 대전시장이 내년 축제부턴 ‘대전문화재단’에 많은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예술인 공연 콘텐츠 사업을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의미다. 첫 회 축제에서 지역예술인 참여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조치로도 풀이된다.

이밖에 이 시장은 원도심 곳곳의 소극장과 공실 공간을 공연 무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특히 최근 매입과 보존을 결정한 옛 대전부청사 등 근대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언급해 주목된다. 축제 기간 민원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보행자 위주 거리로 유지하겠다는 방침도 확고하다. 

움켜쥔 권한을 내어주고, 다양한 예술인들에게 문을 열고, 시대와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지향하는 일.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든 에든버러가 대전시에 주는 영감이자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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