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기 변호사의 법률톡톡]

송문기 변호사.
송문기 변호사.

필자는 종종 법률용어가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일본식 한자어가 많다거나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대중들로부터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냐고 지적받는 몇가지 단어들을 살펴보면, 일본식 한자어기는커녕 도리어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사용된 한문이거니와 국내에서도 수백년 전부터 쓰고 있던 한문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구거→도랑, 가료→치료, 사찰→조사…일제 잔재 법률용어 바꾸기 분주”라는 제하의 기사(한국경제)에서 “민법에서 순우리말인 ‘도랑’과 ‘둑’을 ‘구거(溝渠)’와 ‘언(堰)’이라는 일본식 한자 표현으로 쓰는 게 한 예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언론에서도 그러한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

제방(둑)을 가리키는 ‘언(堰)’이라는 글자가 언제 어디서 사용되어왔는지 역사 속의 실제 용례부터 살펴보자.

우선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진(秦)나라가 파촉을 정복하고 기원전 256년에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된 이빙(李冰, 민간에서는 훗날 치수의 업적을 기려 수신水神으로 숭배하기도 한다.)이 건축하였고 촉한의 무향후 제갈량이 보수하여 유명한 관광지가 된 중국 사천성의 도강언(都江堰)의 이름에도 ‘언(堰)’ 자가 제방의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다.

아래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언(堰)’ 자 및 ‘구거(溝渠)’라는 단어는 예로부터 사용되던 표현이지, 입법자들이 일본식 한자어를 무분별하게 법률로 이식하고 유지한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태조실록 8권, 태조 4년 7월 30일 신유 3번째기사)을 보아도 “농사를 장려하는 중요한 일은 제언(堤堰)을 쌓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고, 세종실록(세종실록 105권, 세종 26년 8월 12일 무오 1번째기사)을 보면 김종서·정인지 등이 “제언(堤堰)은 농사에 매우 유리합니다.”라고 하고 있으며, 정조실록(정조실록 13권, 정조 6년 4월 4일 경오 4번째기사)을 보면 “구거(溝渠)를 수리하라.”고 정조가 하교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금고형(禁錮刑) 역시 그 용례가 뿌리깊은 것으로서, 후한後漢 말기 당고의 금(黨錮之禁) 사건에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금고형은 노역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징역형과 차이가 있는데, 당고의 금은 이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나 당시 사대부들의 출사를 금하는 처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일각에서 자신들이 선각자인 것마냥 또는 학문이식에 있어 일본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할 요량으로, 자신이 모르는 어려운 한자어들은 모조리 일본식 용어라고 몰아붙이거나 ‘한국법은 근대 일본법을 베껴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식 법률용어가 많다.’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동양 고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언어의 역사성·도구성에 비추어보건대 필자 또한 거의 사어에 가까워진 단어들을 현대에 맞게 순화해야 한다거나, 법전에 한문과 한글을 병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문물과 근대학문을 받아들이면서 학문용어를 번역하느라 도리어 수천년 간 쌓여온 동양 고전과 한문 용례를 참고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법률용어는 그 자체로 쟁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대체될 수도 없다.

예컨대 정당방위는 ‘정당’과 ‘방위’의 두 단어로 분절할 수 있다. ‘정당’한 방위라는 것은 곧 위법한 침해에 대한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행위가 위법한 침해인지 아닌지가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상대방인 피해자와, 피고인으로서 정당방위를 주장하여야 하는 의뢰인이 싸움에 이르게 된 경위가 의뢰인의 도발에 기인한 것이라는 등의 사정이 있다면 상대방인 피해자의 폭행 등에 대하여 의뢰인이 폭행으로 응수하는 등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정확히 도발에 관한 판례는 아니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와 피고인 간의 말다툼에서 시작된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가 지나치게 중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심은 (...) 이 사건 범행 직전 피고인과 피해자가 메신저로 말다툼을 하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러 와서도 말다툼이 계속되었으며, (...) 피고인의 위와 같은 폭력행위로 피해자는 내경동맥의 손상, 혈전에 의한 뇌경색 등으로 언어장애 및 우측 반신마비 등에 이른 사실을 인정한 후, 이 사건 범행의 경위, 그 방법 및 태양, 폭력성과 위험성의 정도, 범행 당시의 상황, 피고인이 당한 폭행의 정도 및 피해자의 중 상해 정도 등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부당한 공격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여 가해하게 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과잉방위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 원심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과잉방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1도4278 판결 중상해)”라고 판시하여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을 명시적으로 판시하고 있으므로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방위’라는 단어를 보건대 당연히 공격의사로 행하는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방위행위가 물건을 들고 막기만 하는 등의 순수한 수비적 방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상대의 공격에 맞서 흉기를 빼앗는 등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도 포함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이다.

대법원은 92도2540 판결에서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되나, 그 방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 살인)”라고 판시하였다.

그렇다면 행위 자체는 일견 공격적이었을지라도 행위의사 자체는 방위에 있었다고 보이면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는 셈이다.

다만 필자가 연초에 “피해자가 된 가해자들, 아니면 가해자가 된 피해자들(사기)”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고의의 존부를 증명하는 방법에 관하여 “인식 또는 고의는 내심의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이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이 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도4806 판결)”라고 판례를 소개하였듯이,

수사과정의 피의자 또는 공소제기된 피고인은 자신의 공격적인 행위가 쌍방폭행 등 공격적인 의도가 아니고(즉, ‘저놈이 날 때렸는데 내가 그것도 못 때립니까?’라는 등의 분노에 눈이 먼 진술은 정당방위를 주장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상대를 제압하기 위하여 반격방어의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사과정에서부터 주변 정황에 합치되게 일관되게 진술하여야 할 것이다.

[송문기 변호사]
*대전광역시교육청 지방공무원 인사위원회 위원(현)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실무수습 제도개선TF 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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