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암수 구별과 한 장소에 설립했으면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 부군수).

맹자(孟子)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시장 곁을 떠났는지 모르지만 나는 시장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 딱히 구입할 물건이 없고 딱히 할 일이 없더라도 이곳저곳 둘러보기를 좋아한다. 혼자일 때도 있고 친구와 같이 일 때도 있다. 시장에 가서 분주한 사람들 속에 섞이면 활기참을 느낄 수 있고,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시장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괴질 코로나 여파로 시장이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웠는데 요즈음 다시 시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활기를 되찾고 있어서 좋다. 내가 주로 시장 구경을 하는 곳은 역전시장과 인접한 중앙시장이다. 꽃가게도 가보고, 먹자거리도 가보고, 헌책방도 가보고, 오래된 진기한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골동품 점에도 가본다. 때로는 꼬막이나 순대 한 접시 놓고 막걸리 한 병을 마시기도 하고, 때로는 헌책방에서 헌책을 한권 사기도 한다.

오늘은 시장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어느 날에 본 중앙시장의 멧돼지상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한다. 그동안 자주 시장 구경을 다녔지만 중앙시장에 멧돼지상이 있음을 안 것은 그리 오래지가 않다. 무심히 지나친 탓이거나 멧돼지상이 작은데다가 외진 곳에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멧돼지상은 암수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원동 쪽의 동문 7번 안쪽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길옆에 작은 모습으로 서있는데 수퇘지였고, 한 마리는 중앙시장 북문께의 역전 통 대로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들면 바로 길 가장자리에 서있는데 암퇘지였다. 암수 멧돼지상에는 서로 간에 떨어진 방향과 거리를 표시하고 있었는데 이격거리가 380m나 되었고, 공히 같은 내용으로 설명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대전광역시의 한 세기 역사와 동구를 대표하는 중앙시장에는 식장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복돼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돼지를 만났을 때 암퇘지는 건강과 다산을, 수퇘지는 직업과 재물의 복을 가져다주며, 두 마리를 모두 만나게 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중앙시장의 생명력과 넉넉한 인심을 상징하는 복돼지의 행운을 모두 함께 나누길 기원합니다.’

대전중앙시장에 설치된 복돼지상.
대전중앙시장에 설치된 복돼지상.

글 내용으로 보아 시장 상인들이 암수 복돼지의 행운을 누리려는 희망과 함께 시장고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처음 멧돼지상을 봤을 때는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이런 게 있구나.’할 뿐이었다. 그러다 몇 번 보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상한 점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는 두 마리 모두가 서있는 입상으로 크기가 같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암수의 구별이 없다는 점이었다. 몇 번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한 틀로 두 마리를 찍어내어 하나는 수퇘지라 하고, 또 하나는 암퇘지라고 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는데 상징물로는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미국의 뉴욕시에 갔을 때 월가에서 봤던 ‘황소상’이 떠올라서였다.

월가의 보도 위에는 네 발로 땅을 딛고 있는 우람한 황소상이 서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황소상에는 전해지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다. 일종의 스토리텔링이었다. 황소의 뒷다리 밑에는 튼실하고 커다란 두 쪽의 불알이 달려 있었는데 여기를 만지는 사람은 부자가 된다거나 많은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서 그런지 황소상의 다른 몸 색깔에 비해 그곳만큼은 금방 닦아놓은 놋쇠그릇처럼 반짝거렸다. 나도 줄을 섰다가 만져봤던 추억이 새롭다. 촉감이 반질반질했던 것이다.

이제 중앙시장 멧돼지상이 상징물로서 아쉬운 점을 말해본다. 우선은 상징물로서의 크기가 작다는 점이다. 시장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크기는 되어야지 싶은 것이다. 또 수퇘지는 뉴욕 월가의 황소상처럼 당당한 수컷의 상징을 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멧돼지상은 암수를 불문하고 네 다리를 곧게 펴고 얌전히 서있는 모습으로 크기와 생김새가 똑같다. 암퇘지상에도 암컷을 상징하는 젖조차 달려있지 않다. 또 하나는 굳이 암수의 멧돼지상을 380m나 멀리 떨어진 외진 장소에 따로따로 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구경을 좋아하고 시장을 자주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 희망을 말해본다면 멧돼지상이 암수가 확연히 구분되게 만들고 크기를 좀 더 키웠으면 어떨까 싶다. 암퇘지는 수퇘지와 달리 새끼를 몇 마리 거느리고 풍만한 젖을 먹이는 형상이면 어떨까. 선 채든 누운 채든 풍요롭고 평화로운 형상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또 하나는 암수의 상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구역의 널찍한 장소를 택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함께 세우는 것이 더 낫지 싶다.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는 ‘복돼지를 만나면 어떤 소원이 이뤄진다’는 피동적인 점에서 전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을 찾는 고객이나 필자 같은 구경꾼들이 능동적인 행동을 하도록 목적성을 부여하면 어떨까 싶다. 뉴욕 월가의 황소상처럼 수퇘지의 상징을 만지면 재물 복이 들어온다든지, 암퇘지의 풍만한 젖이나 새끼들을 어루만지면 건강과 다산의 복이 들어온다든지 하면 더 좋지 싶은 것이다.

아무튼 중앙시장의 멧돼지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시장고객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실상부한 대전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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