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광영의 손 스피커 ]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행정안전부 제공.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행정안전부 제공. 

지난 7월25일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예견된 참사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음은 물론이고 참사 이후 이상민 장관의 언행은 유족과 국민의 공분을 샀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 등 재난관리 주무장관이 해서 안 될 말들을 쏟아 냈다.

야당은 그에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우이독경이었다.

급기야 2022년 12월 11일 국회가 182명의 찬성 표결로 이상민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민주당 주도로 2월 8일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고 공을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이상민 장관이 이태원 참사 예방‧대응‧수습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회는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이 형사상 유무죄 여부를 다투거나 양형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고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을 다했는지 묻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67일 만에 헌재는 “이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재난 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규범적 심판 절차인 탄핵 심판 절차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별개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조차도 국가공무원법 성실의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159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책임진 사람은 아직 없다.

사회적 참사에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이태원 참사 직후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을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도 묘연하다.

많은 국민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민 장관이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말단 공무원 몇 명이 이 사태의 책임자가 되었다. 지난 홍수 때 오송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참사 책임의 소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권력은 참사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말단 부서에서 꼬리를 자르거나 어느 한 사람한테 독박을 씌워 비난 여론을 잠재우려 한다.

오광영 전 대전시의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오광영 전 대전시의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아니면 억지 괴담으로 포장해 진영 대결로 몰아가 ‘프레임 바꾸기’를 시도한다. ‘외국의 향락놀이에 빠진 철없는 것들’, ‘마약의 온상에서 벌어진 사고’ 등이 보수를 중심으로 퍼졌던 사실을 기억해 보라.

10.29대책위에 대해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소환하며 ‘시체팔이’ 운운하는 권력의 홍위병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크다. 이런 왜곡보다 더욱 악의적인 것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모두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행태다.

“이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공범이다”

참사 4일 후 진중권이라는 논객이 중앙일보에 쓴 칼럼의 결론 부분이다. 어떤 이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고 참사의 원인에 대해 여러 의혹이 쏟아지는 시점에 모두의 책임을 주장하는 용기가 놀랍다.

사회적 재난은 예측 가능했던 위험이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측 가능한 위험을 관리하는 일은 당연히 국가의 책무다. 국민은 국가에게 의무를 수행하도록 권력과 예산을 주었다. 그럼에도 국가가 권리만 취하고 본연의 임무를 방기할 때 사회적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재난의 책임을 피해 당사자에게 떠넘기거나 모두의 책임으로 호도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 공동체가 같이 그 책임에 대해 되돌아보고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국가가 응당 져야 할 책임을 개인과 공동체에게 넘기며 모두가 책임지자고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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