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행복’이란 주제의 강의는 참 많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란 질문을 받기도 한다. 강의를 청강하는 사람들은 “네”라고 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표는 ‘행복’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살려고 했는가? 어쩌면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덜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 살아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직장을 갖고, 취미생활을 갖고, 집을 장만하고, 물질적인 채움과 돈을 저축한다고 스스로 믿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더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이 마치 비례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런 모순된 생각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행복과 불행은 자신 안에 있다’고 말을 한다. 스스로 그물망을 치고 그 속에 또 여러 개의 그물망을 친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이 그물망에 걸렸다고 느낄 때는 여지없이 ‘우울’이란 감옥으로 넣어버린다. 그런 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우울을 노출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굴레 속에서 타인의 위로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행복해지는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들의 내면에는 ‘야단맞고 눈치 보고 두려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있다. 

‘어른’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결국 ‘아이’가 아닌 척을 할 뿐, 우리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다르다면 그것은 ‘생활의 지혜’가 적고 많음의 차이다. 아이가 분노를 참지 않는다면 어른은 한 번 이상은 참아보려고 한다. 반대로 아이가 분노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어른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더 이상의 불안과 우울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어떤 누구에게는 그런 행동이 협박으로 보이기도 하고, 빈번한 행동이었다면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무관심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남에게 보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부정의 감정 속에서 집을 짓고 살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자신만의 욕망(이득)을 위한 것이라면 No(안 된다)라고 말할 것이다. 

욕망이 거창하게 들린다면, 출세욕, 수면욕, 성욕, 물질욕, 식욕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질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알고 싶어 하고, 자신이 이해되어야 하고,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면증이 빈번하고, 두통 등 신체화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 자녀에 대한 걱정, 일(사업)에 대한 걱정, 관계(가족, 친구, 지인, 동료 등)에서 오는 걱정 등 어떠한 결과도 없고, 상상을 뛰어넘는 오만가지의 생각에서 오는 욕망도 있다. 혹시 불면증을 앓고 있다면 ‘생각의 생각’, ‘걱정의 걱정’이 좀 더 구체적이면 불면증 등의 신체화 증상은 감소되어질 것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