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통] 지금은 담대한 발상이 필요한 때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1974년, 서울과 부산에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광주, 대구, 인천이 1979년에는 대전이 뒤를 이으며, 전국의 주요 대도시가 순차적으로 무시험 배정의 원칙에 따라 고등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중학교에서는 이미 1969년 서울에서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것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전주로 확대되었고, 1971년에는 대한민국 모든 지역에서 폐지되었다. 중고등학교의 입시 폐지와 평준화는 당시 교육계에서는 경천동지의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학교 간 편차가 매우 큰 상황에서 시험 없이 추첨 배정한다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의 연륜은 물론이고 시설과 교육의 질이 엄청난 차이를 빚고 있는 터에 학생의 능력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강제 배정하겠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서울, 부산이나 도청 소재지의 광역시에는 명문고들이 있어 대학 입시에서 타의 주종의 불허했다. 서울의 서너 개 고교가 수백 명씩을 서울대에 입학시켰고, 지역의 명문고에서도 각기 백여 명 가까이 보내던 시절이었다. 지역의 인재들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믿는 학부모들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지만, 화를 삭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 목소리가 아예 차단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1974년에는 헌법 개정 논의조차 금지시키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여 다스리는 긴급조치 시대였다. 그해 4월에는 민청학련사건까지 터지면서 사회는 급속히 경색되었다. 반대가 차단된 상황에서 이 제도는 초창기의 많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점차 제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우선, 초·중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때나마 초·중학교 학생들을 과중한 입시 부담에서 해방시켜 전인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또 지역 간, 학교 간 교육 격차가 완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평준화는 지역별 고등학교 학벌로 끼리끼리 뭉쳐 폐해를 낳을 수 있는 관료 체제와 지역 토호 세력의 카르텔을 깨는 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는 지역마다 특정 고교 학벌들이 법조, 의료, 공무원 사회 등 주요 요직을 차지하여 편중된 권력이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평준화는 1990년대 들어 특수목적고의 설립과, 근래 들어 자사고의 허용으로 퇴색하고 말았으나, 아직도 평준화의 큰 틀은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그 이후, 우리의 교육은 개혁다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채 학생과 학부모만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 대학으로의 집중화와 대학의 서열화이다. 대학의 체질 개선이나 교육의 질 문제는 제쳐두고 오로지 입시에 의해서 서열화된 대학에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배정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대학 입시가 곧 교육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에 따라 사교육만 번창하였다.

이로 인해 나타난 모순과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수십 년째 제도를 개선하려고 했으나, 그저 지엽적인 내용에만 매달려 왈가왈부하는 통에 전혀 진전이 없었다. 입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사교육 의존도만 더욱 높아졌던 것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수능 개편 방안을 추진했다. 집권 초기 수능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자 5백여 명의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지역을 순회하며 토론회를 여는 등 민주적인 의사결정 속에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론화는 '합의된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수능 위주 전형의 비중을 높이자는 안과 수능의 절대평가화 방안이 팽팽하게 맞섰던 것이다. 결국 27억 원의 예산과 공을 들였지만 현행 유지가 결론이었다. 시민 참여단은 각자의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현실에 기울어지기 쉬운 구조였다. 이 복잡한 문제를 비전문가에게 맡겨 공론에 부치는 것은 비관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일부 교원단체들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사례는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끼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금 이 시대에 교육을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교육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1970년대의 백만 명 출생 시대에서 지금은 겨우 이십오만 명 출생 시대이다. 이런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미래의 젊은이들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복지비용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백만 명 세대를 이십오만 명 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시대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 출생아들을 모두 좋은 교육으로 이끌어 미래에 어떻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 개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성인들의 미래는 파산에 놓이고 말지도 모른다.

수능 문제를 개선한다고 해서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의 폐해가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새롭고 담대한 발상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안이라고 본다.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근대 시기에 선진 서구의 교육체제를 도입하여 근대화에 성공하였듯이 결국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본다.

특별한 자원도 없고, 인구도 적지만,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인 핀란드의 사례는 20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교육전문가들이 주목해왔고, 관련 서적도 많이 출판되었다. 토론이나 연구도 제법 활발했으나, 문화나 환경의 차이를 이유로 수용을 위한 진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능의 킬러문항이 사교육 카르텔의 원흉으로 지적당하고 온갖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본질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다. 지금 애꿎은 수능 문제 탓만 하고 있을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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