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일흔아홉번째 이야기] 벼락치기 정책보다 숙의가 먼저다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아니, 교육계뿐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대통령 지시가 옳다, 그르다며 격랑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의 ‘수능 지시’는 사교육 척결에 방점을 뒀다. 대통령은 교육 당국을 겨냥해 ‘한 편(카르텔)’이란 표현까지 썼다. 강성노조, 보조금 비리 세력 등을 ‘척결 대상’이라는 의미로서 카르텔이란 규정을 해온 만큼, 교육개혁도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걸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교육 시장을 바로잡아 교육 본질을 회복하겠다는 발상에도 공감한다. 다만, 한 나라의 교육 정책을 ‘벼락치기’식으로 끌고 가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이미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교육 현장은 큰 혼란에 빠졌고, 국민마저 두 패로 갈라졌으니.

국가 교육 정책을 ‘탑다운’ 방식으로 결정하고 시행하려는 건, 제왕적 국가의 통치체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민감한 정책이나 개혁을 추진할 때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정부는 개혁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열고 국민 의견을 다방면으로 듣는다. 그다음 로드맵을 만들어 점진적으로 제도를 시행한다. 시행착오나 국민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그래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 이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지시에 찍소리는커녕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만 읊고 있다. “대입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저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과 대화하며) 배우는 상황”(이주호 교육부장관)이란 발언이 그것이다.

사교육을 때려잡겠다며 자사고와 특목고는 살려두는 건 무슨 경우인가. 카르텔을 없애겠다고 하면 카르텔을 쳐야지, 왜 엉뚱한 수능을 치냐는 얘기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그 직업의 귀천이 학력에 의해 결정되는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구조가 고쳐지지 않는데, 수능만 바꾼다고 될 문제인가. 

사교육을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 공교육을 살리는 정책이어야 장기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정권이 암만 바뀌어도 근시안적인 정책만 반복하니 제자리걸음만 하는 건 아닐까. 

교육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글로컬 예비대학’만 봐도 그렇다. 신입생이 없어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대학 입장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물음표만 달린다. 일부 지방대는 ‘통합’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사활을 걸었음에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지역에 미래가 없는데 누가 지방대를 가려고 할 것이며, 또 무슨 희망이 있겠나. 이는 곧 ‘지역소멸’이라는 국가 현안과도 맞닿아 있다. 대학마저 수도권에 몰린다면 지역소멸은 가속화될 게 뻔하다. 

정권과 정치가 교육을 지배하려 든다면, 백년대계를 역행하다 못해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두렵고, 무섭다. 대통령이 말만 했는데도 이럴진대, 후폭풍은 얼마나 심할까. 지난번 ‘5세 입학’ 때처럼 ‘없던 일’로 끝난다면, 그것도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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