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장마철 집중호우 모습. 자료사진.
장마철 집중호우 모습. 자료사진.

몇 년 전, 갑작스러운 집중 호우로 대전 일부 시가지가 물바다가 되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강수량을 하수구가 감당해 내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배수구의 ‘입’ 역할을 하는 ‘빗물받이’가 막혀 물이 빠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빗물받이 위에 담배꽁초, 비닐, 종이 등 쓰레기와 낙엽, 진흙으로 꽉 차 있고, 심지어 고무판, 신발 매트 등으로 덮여 있어 아예 배수가 안 되는 곳도 있었다. 빠지지 못한 물은 길 위에서 헤매다가 지하실이나 지하 주차장으로 쏟아지듯 들어갔다.

유성에서는 상가 지하 주차장에 물이 들이차서 자동차가 물에 잠기자 소방차가 출동하여 퍼냈다. 양수기로 이틀이나 걸려 물을 뿜어낸 다음, 일주일 넘게 대형 선풍기를 돌려 습기를 말린 지하 주차장도 있었다. 물에 젖어 못쓰게 된 물품은 버려야 했고, 겨우 쓸 만한 것을 골라 햇볕에 말렸다.

3년 전에는 폭우로 정림동 아파트 단지가 물바다가 되어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타고 대피하기도 했다. 이때 한 아파트 지하에 물이 들이찼는데 마침 지하에 들어갔던 분이 변을 당했다. 그분은 우유배달, 보험, 대리운전까지 하며 다섯 자녀와 세 명의 장애우를 돌보았다는 사연이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날도 장애인을 위한 용품을 가지러 지하에 들어갔다가 일을 당하고 말았다.

지난해에도 전국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큰 피해를 보았다. 서울에서는 반 지하방이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경북 포항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들어차면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해마다 지하시설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은 올해도 지구 곳곳에 불볕더위와 폭우를 예상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태평양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가 발생하여 폭우와 함께 무더위가 극심할 것이라고 한다. 집중호우로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면 미처 손쓰기 어려운 물난리가 일어난다.

하천 정비, 배수로 준설 등으로 대비하고 있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시가지나 주택가에서 일어나는 침수 피해는 많은 강우량을 처리하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지만, 빗물받이가 막혀 물이 빠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배수로, 하수도를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빗물받이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배수로나 하수도를 아무리 만들고 정비하더라도 빗물받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물난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지자체에서는 하수구 정비, 산지의 임산부산물 제거 등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이 참여하는 방재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하나로 복지관, 노인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사회 서비스형 일자리’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대전서구시니어클럽에서는 ‘국민재난예방안전모니터링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장마철에 대비하여 시니어들이 시가지를 순찰하고 배수로 점검과 배수로에 쓰레기 투척 금지 계도 활동을 하고 있다. 폭우, 홍수 등 재난 우려 지역을 조사하여 지자체에 통보하는 일도 그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직접 빗물받이 오물 제거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이는 도로, 하천 관리기관의 업무수행 역량 한계를 보완하고 시민이 함께하는 안전의식 함양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의 경험과 근로 능력을 활용하여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일거양득인 셈이다.

예로부터 치산치수는 지도자가 하여야 할 일 가운데 으뜸으로 삼았다. 그 뜻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변화무쌍한 천재는 완벽히 막지 못하더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장비와 인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하여야 한다. 아직 일할 수 있는 시니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대안의 하나가 되리라고 본다.

아무쪼록 국가와 지자체를 비롯한 관계기관과 시민이 함께하는 재난 예방 활동으로 피해 없는 여름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 반지하방 일가족 참사, 포항 지하 주차장 침수 사고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에 작은 틈도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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