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학폭 호소 후 사망' 천안 고교생 사건을 보며

충남지역 한 초등학교에 세워진 학교폭력 예방 입간판 모습. 유솔아 기자.
충남지역 한 초등학교에 세워진 학교폭력 예방 입간판 모습. 유솔아 기자.

“학생 대상 학교폭력 예방교육과 교사의 학교폭력 근절연수를 강화하고,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지난 8일 도교육청 주간업무보고에서 공직자들을 향해 학교폭력(학폭) 예방을 당부했다. 같은 달 3일 태안에서 한 중학생이 후배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된 것이 배경이었다. 

김 교육감은 이날 학폭 피해학생 심리치유와 의료 지원, 교내 인권교육·정보통신 윤리교육, 학교주변 안전 취약지역 순회지도 강화 등도 지시했다. 

지난 11일 천안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김모 군이 학폭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김 교육감 당부와 지시가 있은지 사흘 만이다. 

숨진 김 군 부모는 가해학생들과 담당 교사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조사와 함께 도교육청, 천안교육지원청도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학교는 오는 31일 학폭 전담기구를 열고, 이후 교육지원청은 대책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는 현행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라인’에 따른 조처다. 학폭 매뉴얼을 근거로 이번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김 군이 학교폭력을 호소하던 3년 동안 ‘학폭 매뉴얼(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매뉴얼에는 사전예방부터 초기 대응, 사안조사, 전담기구 심의, 심의위원회, 피해·가해학생 조치, 재발방지 등 학폭 전 과정 처리방법이 나와 있다. 

교사는 이에 따라 학교폭력 발생 전 초기 대응 의무가 있다. 학생관찰, 실태조사, 교·내외 순회지도, 교내 학교폭력 신고 등을 통해 학폭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 이를 알았을 땐 ‘지체 없이’ 학교장과 전담기구에게 보고해야 한다. 

현재 사건 초기대응을 둘러싼 학교와 유족 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유족 측은 담임교사에게 대책심의위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교사가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측은 학폭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김군의 학교생활 어디에도 학폭을 의심할만한 정황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양 측 입장이 갈린다는 건, 학폭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인 셈이다. 또 현행 매뉴얼로는 남몰래 김군 같은 피해를 겪는 학생을 발견할 수 없다는 허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교육청은 학교 현장에서 이 매뉴얼이 정상 작동하는지 점검부터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을 확인하면 수정·보완해야 한다. 또 학교의 실행의지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만큼, 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교육청과 교육자들은 김군이 유서에서 “내가 신고한들 뭐가 달라질까” “학교폭력을 당해보니 왜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는지 알 것 같다”는 호소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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