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전 부여부군수.
나창호 전 부여부군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막강한 권력을 쥐었던 고대중국의 진시황(秦始皇)도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에서 불로초를 찾게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죽음이란 이같이 언젠가는 맞아야 할 일이고, 반드시 가야할 인생의 길이지만 아무자리에서나 죽음을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듣기에 유쾌한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인이나 친척집의 아이 돌잔치에 참석했을 때, “튼튼하기가 장군감이다”라거나, “연필 집는 것을 보니 장차 대학자가 되겠다.”는 등의 덕담들을 할 것이다. 아이의 부모도 흐뭇해하며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놈 참 잘 생겼다만 반드시 죽겠구나.”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잔치 분위기가 이내 썰렁해지고, 아이의 부모 역시 불쾌한 표정으로 “왜 좋은 자리에서 악담을 하느냐?”고 싸늘하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가 장차 장군이 될지, 대학자가 될지는 불확실한 미래의 사실일 뿐이고, 미래에 도래가 확실한 사실은 아이의 죽음 아니겠는가? 인간이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불변의 사실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아마도 장수한 분의 장례식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호상이라고 말하는 걸 보아서도 그렇다. 곱게 장수한 분의 장례자리에서도 그렇지만, 때로는 오래도록 병고로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자리에서도 죽음을 거론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자식들을 고생시키더니 잘 돌아가셨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어떤 죽음자리라도 조용조용 말해야지 크게 웃고 떠들 일은 아니다. 죽음은 어떤 죽음이라도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요즈음 말하기 어려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리며 산다. 퇴직공무원조합에서 재능나눔봉사의 일환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도와주는 상담사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신체가 노쇠하여 자연사를 하거나, 병을 앓다가 죽거나, 사고로 다쳐서 죽거나 어느 때고 임종과정을 겪게 된다. 사람이 임종과정-복수의 의사들이 판정을 하지만-에 들면 신체기능은 물론 장기의 기능까지 급격히 떨어져서 좋은 약과 최선의 처방을 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게 되고 끝내는 임종에 이른다.

이 때 환자에게 치료의 효과는 없이 고통과 비용을 수반하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이를 중단하는 조치를 하도록 사전에 문서로 작성한 의사표시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해놓는 제도가 있다.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하는 방법인데 본인만이 직접 작성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제도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의향서 작성을 돕는 과정에서 자연히 죽음이니 임종이니 연명의료중단이니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작성된 의향서는 퇴직공무원조합의 전담자가 등록을 한다. 그런데 이 제도는 등록을 했더라도 차후에 본인의 의사가 달라지면 등록을 철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굳이 철회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절차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제도가 좋다고 이해돼 이미 1년여 전에 등록절치를 마치고 등록증까지 교부받은 바 있다. 그런데 올 연초에 퇴직공무원조합에서 이 사업을 펼친다면서 응모해보라는 연락이 와서 흔쾌히 참여했던 것이다. 물론 선발을 위한 면접시험도 보고, 선발된 40명의 전직공무원과 함께 소정의 온-오프라인 교육과정도 마친바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애초부터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도중에 중단하더라도 통증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앗는 안락사 제도가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중단 항목과 관련하여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우리는 생활주변에서 정기적으로 신장투석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신장기능은 떨어졌지만 다른 신체조건이 좋아 투석 후에는 회복이 되기 때문인데, 혹자는 이러한 경우에도 투석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차후에 신체가 노쇠하거나, 신장기능이 더 떨어져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임종단계에 들면 더 이상 투석의 의미가 없으므로 이를 중단하는 것이다.

항암제 투여의 경우도 임종 기에 든 사람은 신체가 쇠약하여 항암제가 암세포 뿐 만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손상시켜 나타나는 위장장애나 탈모증 등의 부작용을 이겨내기 어렵고, 외려 치료효과 보다 환자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기 때문에 이를 중단하는 것이다.

다음은 심폐소생술의 경우다. 심폐소생술은 가슴 압박과 인공호흡으로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주는 응급처치인데, 임종과정의 환자에게는 이를 시행해도 소생 가능성이 매우 낮고, 일시 소생해도 짧은 시일 내에 다시 심정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외려 가슴 압박으로 인한 갈비뼈 골절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효과도 미미해서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다.

인공호흡기의 경우는 질환으로 인해 호흡이 불안정하고 폐기능이 상실될 때, 입으로 넣은 기관내 튜브에 연결하여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인데, 치료효과 없이 환자의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라 할 수 있다. 튜브를 입안으로 넣거나, 목을 뚫고 넣는 과정에서 치아나 식도 천공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연명의료중단항목으로는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 등이 있다.

한 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앓고서 죽는다.”는 9988124라는 숫자가 유행한 일이 있다. 누구나 이렇게 죽는다면 더 없이 행복한 죽음일 것이다. 사람들마다 9988124하기를 바라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죽음의 복을 타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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