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전기차 충전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자료사진.
전기차 충전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자료사진.

친환경이 강조되면서 전기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증가율은 68.4%로 가파른 상승률을 보였다.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는 이미 40만 대에 이른다. 전기차가 늘어나고 또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충전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기존 아파트는 전체 주차면 수의 2% 이상, 신축 아파트는 5%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의 충전기 설치기준 확대 조치에 대비하여 아예 법정 비율 이상으로 설치한 아파트도 있다. 벌칙 규정도 있다. 충전기가 있는 곳에 일반 차가 주차하거나 충전을 방해하면 10만 원, 충전 시설 또는 구역 표시 등을 훼손하는 경우 2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차장이 부족하여 이중 주차, 단지 내 도로변 주차 등 불편을 겪는데도 충전기 설치 구역은 텅 빈 채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충전기가 설치되지 아니한 주차구역에도 ‘전기차 전용 구역’으로 지정하여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는 일반차량에는 불평·불만의 눈길을 쏟아내는 공간이 되고 만다. 전기차 소유자와 일반차 소유자 사이에 위화감이 커지고 입주민 사이에 갈등도 일어나고 있다.

일정 충전 시간 이후에도 계속 주차 시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적발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전기차 소유자들 사이의 불편에 관한 사항이라 일반 차 소유자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충전 시간 이후 계속 주차 여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기차가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등록 차량 대수의 2%에 불과할 만큼 아직은 보급 초기 단계이다. 문제는 앞으로 전기차가 많이 늘어날수록 충전기 증설이 필요할 것이고, 이에 따라 관련 조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여러 문제점을 찾아 적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첫째, 아파트 등 공동주택 등에 충전기 추가 설치 의무를 지운다면 이는 합당하지 않다. 아파트주차장은 주차가 목적이지 특정 시설 설치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은 일부 소유자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는데, 정책에 의한 불가피한 조치라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주차구역 지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이고 방향이다.

그렇다고 아파트단지 자체로 일정 수의 충전기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지금도 부족한 주차 면수를 잠식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 더 이상 아파트 단지 내 충전기 설치를 강제하지 않아야 한다. 이에 관련 기관은 사업장, 공영주차장, 주택가 등에 충전소 보급 확대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지자체에서 공터를 활용하거나 빈집을 매입하여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하는 등으로 충전을 쉽게 하고, 앞으로 닥칠지 모를 충전 대란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아파트단지의 옥외 체육시설에 충전기 설치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배구, 테니스 등 체육시설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공이 튀는 소리 등 소음으로 입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야간에는 텅 빈곳이다. 그냥 놀리다시피 하는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완화 조치하는 것도 대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전기차 충전시설에 따른 주차장 부족을 완화하고 특히, 지하에서 화재 발생에 대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앞으로 충전기는 지상과 옥외에 설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대부분 충전기는 지하 주차장에 설치되고 있다. 설치가 쉽고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과충전 등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수백, 수천 도의 배터리 자체 발열로 인한 화재를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신속하게 진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화재 차량을 물탱크 안에 담가야 진압이 가능한 수준이다. 지하 주차장 입구는 높이가 낮아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도 걸림돌이다.

전기차 화재는 조기 진압이 어려운 관계로 확산한 불이 지하 주차장이나 단지 전체로 번질 위험도 있다. 기존 지하 시설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차량용 질식 소화포나 전용 소화기를 비치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주차면 바닥이나 천장에 대용량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화재 발생 시 나오는 위험물질을 외부로 배출하기 위한 배연 시설도 함께 설치돼야 한다.

상황변화는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기차 증가에 따른 충전기를 설치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예측하고 미리 대처하는 것이 관계 당국의 역할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