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예순세번째 이야기] 삼일절 메시지 담긴 대통령의 역사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누가 죄인인가.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 정당성을 알리며 외친 말이다. 그 외침은 우리 주권을 빼앗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향한 분노였고, 항거였다. 

1919년 삼일 독립운동 이후 104년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104주년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파트너’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 칭하며 양국 협력을 강조했다. 

양국이 협력해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하고, 그것이 곧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삼일절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정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그 ‘짧은 기념사’는 궤변처럼 들렸다. 이 정부에 연설기획 비서관이 있긴 하나 싶을 정도로 괴이한 연설문이었다. 국민 다수가 납득하고 용인하기 힘든 지점이 여기저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파트너’라고 하면서 양국의 첨예한 현안인 강제 동원 배상, 일본군 위안부, 독도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영광의 역사든, 부끄럽고 슬픈 역사든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원론적인 메시지 한 줄 없었다.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역대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일본의 태도 변화’를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우리의 협력 의지만 강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건 간에.

또 하나,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발언.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마치 일제의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들린다. 

‘힘이 없으니 당했지’ ‘다 지나간 일인데 무슨 문제냐’라며 학폭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악행을 가르치고 배우고도, 그들에게 책임과 사과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면, 그래서 과거는 잊고 미래만 보자고 하면, 과연 이 나라가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나라가 대등한 독립 상태여야 한다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 그래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고, 세계 평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들이다. 피해자 입장은 안중에 없고, 가해자에게 자세를 낮추는 게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인가. 졸지에 죄없는 국민만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누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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