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쉰여덟번째 이야기] 이태원 참사와 MB 특사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돌아서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돌아서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01년 7월 21일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市). 불꽃놀이를 보러온 인파가 몰리며 육교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군중 눈사태(crowd surge)’가 발생했다. 군중 눈사태란, 좁은 공간에 밀착한 사람들이 균형을 잃으며 한꺼번에 쓰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사고로 어린이 9명과 70대 여성 2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참사에 책임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유족들은 15년여 동안 지난한 재판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참사 21년 만에 그간의 과정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지나 우리나라도 비슷한 참사를 겪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고 모인 다수의 인파가 좁은 골목길에서 뒤엉키며 300명 넘는 압사 사상자가 나왔다. 

문제는 우리도 아카시시 참사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다는 데 있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는 서서히 ‘그들만의 이야기’로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아랫사람들’만 털고 입건했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의 책임은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7일 활동이 끝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역시 여야 공방으로 55일을 보냈다. 여야는 마지막 날까지 결과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진상조사는 물론이고, 분명한 책임 소재를 가리지 못했다. 앞으로 벌어질 유사한 사태는 어떻게 방지할지 대책도 서지 않았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지만, 거기서도 국민이 납득하고 수긍할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하기 어렵다. 경찰 수사도, 국정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검찰이라고 별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당시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매일 합동분향소에 조문 갔다. 윤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진상규명 후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애도기간 이후 참사와 관련한 언급은 쏙 들어갔다.

최근 일부 보수 언론은 여권발로 UAE 순방을 마치고 온 윤 대통령이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중동 특사로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MB를 특별사면했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수백억원대 뇌물 수수·횡령 혐의 등으로 2020년 10월 징역 17년이 확정됐는데, 14년 넘게 남은 형기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MB를 중동 특사로 보내려면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복권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14년 남짓한 형기도 면제해 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건 없지만, MB 중동 특사에 찬성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MB는 출소 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의 사과나 이태원 참사 당시 윤 대통령 사과의 깊이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려면 진정성 있는 반성과 책임, 재발 방지 약속부터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