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쉰여섯번째 이야기] 지역사회 갈등 사례 공론화해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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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manifesto)’란 선거에서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고, 당선 후에도 공약을 지켜나가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민운동이다. 이는 곧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을 이상적 공약으로 삼았다.

하지만 여야 거대 정당과 후보들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마스터플랜보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대규모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같은 막연하거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 당선 이후에도 공약 이행률이 떨어지고, 선거 때마다 같은 공약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충청권의 경우 지난 21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과 행정수도 완성 등 국가 균형발전을 공약했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도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서대전 육교 지하화는 2018년 지방선거 때부터 나온 얘기고, 대덕 특구와 보문산 개발도 단골 공약이다. 이런 공약들이 풀리진 않고, 그렇다고 안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컨트롤 씨(Ctrl+C)·컨트롤 브이(Ctrl+V) 공약’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적 배경은 지역사회 내에 갈등 사항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실현가능해 보이지 않아 보이는 일을 사람들을 규합하거나 설득해서 바꾸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이나 원도심을 살리자는데 토를 달 정당과 정치인들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지역사회의 갈등이 첨예하고, 찬반이 분명한 이슈는 공약으로 세우지 않는다. 자칫 지역의 여론이 악화하고,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툼이 있는 영역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도 문제다. 정치의 본질은 ‘다툼(토론)’에 있는 까닭이다. 지역사회에 존재는 하지만, 지역민들이 모르고 있는 갈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갈등 사례를 포착해 끄집어내고, 주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렇게 하면 우리 동네가 좋아질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논쟁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를 선거 국면으로 많이 가져가야 한다. 최근 불거진 SRT ‘서대전역 패싱’ 논란이 어쩌면 대표적 사례가 될지 모른다. 

그럴 시간에 행사장 한 군데 더 가고, 유권자 한 명 더 만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눈앞의 공천만 생각하고, 당선만 되고 보자는 식으로 선거를 치러온 것이 작금의 지역 정치권 현실 아닌가. 이런 구태를 벗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기존 공약을 우려먹는 우(愚)를 범할 수밖에 없을 터.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해이다. 남은 1년은 지역사회 갈등 사례를 발굴해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하며 공약으로 다듬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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